[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가상화폐 거래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투자자 보호정책은 '제자리걸음'이다. 정부가 '특별단속 카드'를 꺼내들었음에도 불법행위 단속에 치우친 탓에 투자자 보호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크다.
전문가들은 자칫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경우 고스란히 투자자가 뒤집어쓸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폭락장, 거래소 폐쇄 등으로 인한 후폭풍이 생길 경우에 대비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가상화폐 딜레마 빠진 정부, '특별단속' 돌입
정부는 이달부터 오는 6월까지 가상화폐 불법거래 연루가 의심되는 이상거래를 잡아내고, 거래소의 이용약관이 공정한지 들여다볼 계획이다. 가상화폐 투자 광풍이 위험 수위로 치닫자, 범정부 차원의 특별단속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가상화폐 출금 과정에서 금융사들이 의심거래에 대한 감시·보고를 강화하도록 했으며, 공정거래위원회는 암호화폐거래소의 불공정 약관을 바로잡는다.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은 외환거래법 위반 사례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경찰은 암호화폐 불법행위 유형별로 전담부서를 세분화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도 규제보다는 말 그대로 불법 외화송금·투자사기 등 불법행위 단속에 집중된 모습이다. 가상화폐 시장을 규율하는 법안은 검토하지 않는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가상화폐를 금융자산으로 인정한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에 사실상 손을 못 쓰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 이번 특별단속 엄포가 원론적 선언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투자자 보호 장치 없어···투자자가 손실 떠안아야
업계의 제일 큰 우려는 가상화폐 시장이 규제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는 동안 커질 수 있는 투자자들의 피해다. 현재 국내에서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보호할 법적 장치는 전무하다.
가상화폐와 관련된 유일한 법 규정인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도 가상화폐 거래소에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여하는 등의 내용이 골자로, 투자자 보호와는 무관하다.
거래소에는 은행으로부터 실명을 확인할 입출금계좌를 받아야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거래소에 대한 검증 책임 역시 은행들의 몫이다. 금융사고 책임에 대한 부담 탓에 은행들이 계좌 발급을 꺼리면서 거래소는 무더기 폐쇄가 예고된 상황이다.
때문에 곳곳에선 투자자 보호장치와 관련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장은 점점 커지는 반면, 투자자를 위한 보호 규정이 미흡하다 보니 중소형 거래소의 구조조정이 이어질 경우 후폭풍이 거셀 것이라는 얘기다.
◇거래소 폐업 '가시화'···"업권법·가이드라인 필요"
거래소 폐업은 이미 시작됐다. 중국 가상자산 거래소 오케이코인의 한국 현지법인인 오케이코인코리아는 지난 15일부터 서비스를 중단했으며,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데이빗은 오는 6월 서비스를 종료할 예정이다.
특금법 시행 유예기간인 6개월이 끝나는 오는 9월24일까지 실명계좌를 얻지 못한 거래소들은 사실상 폐업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원화 출금이나 이체 등의 조치를 충분히 취하지 않고 돌연 폐업할 경우 생기는 손실은 개인투자자가 고스란히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가 돌연 폐업할 경우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잃거나 투자금 회수에 오랜 기간을 소요해야 한다"며 "지금 가상화폐를 제재할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개인투자자가 스스로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관계자는 "정부의 특별단속은 개인투자자들을 막기에 역부족일뿐더러 가상자산의 산업적 발전이 어렵다"면서 "가상자산 사업, 소비자 보호 등 규정을 담은 별도의 업권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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