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수련'·이중섭 '황소' 등 근대 미술품 1600여점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산 상속 계획이 공개된 가운데 최대 3조원 규모로 알려진 이른바 '이건희 콜렉션'이 사회에 환원된다. 기증이 결정된 이 콜렉션에는 세간의 예상대로 국보급 수작과 세계적인 작품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최고의 수집가이자 미술품 애호가였던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산이 국가기관에 기부되면서 국내 미술·문화계 전시의 격이 한차원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문화예술계는 국보급 문화재와 거장들의 작품을 국민이 향유할 수 있게 됐다며 삼성가의 결정을 반겼다.
28일 고 이건희 회장 유족들은 국보급 문화재와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포함돼 큰 관심을 모은 일명 '이건희 컬렉션' 2만3000여점(1만1000여건)을 국립 기관 등에 기증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장은 선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뒤를 이어 고미술품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수집 활동을 계속해 개인 자격으로 국보급 문화재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유했다. 미술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이 감정가로 2조∼3조원에 이르며, 시가로는 최대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회장은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식 당시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더라도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라고 밝힌 바 있다. 이건희 컬렉션의 해외 유출 우려도 제기됐으나 이 회장의 유족은 이러한 이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예술품을 국민과 함께 향유하기 위해 기증하기로 일찍이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고려 불화 '천수관음 보살도'(보물 2015호) 등 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과 국내에 유일한 문화재 또는 최고(最古) 유물과 고서, 고지도 등 2만1600여점 개인 소장 고미술품은 국립박물관으로 간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 한국 근대 미술 대표작가들의 작품과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작가들의 근대 미술품 1600여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될 예정이다.
한국 근대 미술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들의 작품 중 일부는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작가 연고지의 지자체 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박수근미술관 같은 작가 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국민들이 국내에서도 서양 미술의 수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및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피사로 등의 작품도 기증하기로 했다.
문화예술계는 지정문화재 등이 이번과 같이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만큼 국내 문화자산 보존은 물론 국민의 문화 향유권 제고와 미술사 연구 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해외 유명 미술관과 비교해 소장품이 다소 빈약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을 단숨에 세계적인 미술관급으로 격상시킬 것으로 보인다. 또 국내 작가들의 대표 작품이 빠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목록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게 됐다.
이건희 콜렉션의 규모와 가치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삼성측은 "이 회장이 보유하던 미술품의 대부분을 사회에 기증하는 것"이라며 "지정문화재 등이 이번과 같이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건희 콜렉션 가운데 마크 로스코, 알베르토 자코메티, 프랜시스 베이컨 등 기증 목록에서 제외된 주요 서양 현대미술 작품들은 삼성가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관리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