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과 수련. 같은 모습 같지만 따지고 보면 다른 점이 있다. 수련은 수면 바로 위에 꽃이 나고 연꽃은 수면 위로 솟은 줄기 위에 난다.
'수련'으로 유명한 화가는 모네. 뉴욕 모마(MOMA)에 갔을 때 모네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한 벽면을 차지할 정도로 크기도 어마어마했다. 모마에 전시된 대표작 중 하나다.
인상파 화가 모네는 말년에 걸작 '수련'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물에서 피는 수련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하고 그린 것이다.
그런 모네의 ‘수련’이 이번에 삼성가의 상속세 납부 마감 시한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마치 수련처럼.
모네 외에도 이건희 전 회장의 소장품에는 피카소의 ‘도라 마르의 초상’, 샤갈의 ‘신랑신부의 꽃다발’ 등도 있다. 언론에 보도된 이 전 회장의 소장품은 국보 30점, 보물 82점, 서양 근현대 미술품 1300여 점 등 총 1만3000여 점이다. 미술 애호가 입장에서는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한 작품을 기증을 통해 미술관에서 볼 수 있게 된다니 희소식이다.
2007년으로 거슬러 가면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는 "이 전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가 비자금으로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구입했다"고 폭로했다. 일반인들도 삼성가 소장품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됐다.
삼성가는 미술품을 기증하기로 했지만 앞서 상속세를 대신해 내는 ‘미술품 물납제’가 거론돼 배경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게다가 이건희 회장의 사망 직전에 이광재 의원은 지난해 11월25일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해 물납제 길을 텄다. 오비이락일까? 이 법안 발의에는 이 의원 외에 민주당 의원 19명이 함께했다.
상속세 납부는 연부연납으로 나눠 내기로 했는데, 이 법이 통과하면 미술품 물납제가 인정돼 삼성가는 상속세를 줄일 수 있는가. 그런 의혹과 의심을 받아 삼성가의 상속세 납부마감일 전부터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왔다. 때문에 기증인지, 추후 상속세 납부의 수단인지는 분명히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필자 집에는 오래된 전집이 있다. 전집 한권한권이 주제가 다른데, 그중 한 권은 지금으로 얘기하자면 재테크 관련이다. 어릴 때 읽어 지금도 인상깊게 기억나는 것은 미술품을 모아두면 언젠가 돈이 될 것이란 언급이었는데, 당시로서는 어떻게 이런 게 돈이 될 수 있을까 의아했다. 어리기도 하고 미술에 대한 조예도 없었으니. 삼성의 상속세 납부 소식은 어릴 적 궁금증을 단번에 없앴다.
미술품을 볼 요령도, 살 능력도 깜냥이 안되지만 전집의 재테크 조언만큼은 삼성가 사례로 보자면 신묘하게 맞았다.
삼성가는 결국 삼성생명을 제외한 삼성전자 등 지분은 법정상속에 따른 분할을 택했고 삼성생명 지분은 이재용에게 몰아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권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생명 지분 중 이건희 회장의 20.76% 중 절반인 10.44%를 차지했다. 이부진 사장은 6.92% 이서현 이사장은 3.46%로 나눠 가졌다. 이부진 사장은 삼성생명 지분만은 이재용 부회장보다는 적지만 이서현 이사장보다 많이 받았다.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는 19.34%를 들고 있는 삼성물산이다. 개인으로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 주주다.
이러한 이 부회장 힘 싣기는 보험업법 개정안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진행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그룹감독 규정으로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정리하도록 돼 있는데 이번 지분 정리는 이에 대한 포석으로 보인다.
이 개정안은 보험사의 보유 주식 가치를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바꿔 평가하는 내용으로, 현재 보험사는 계열사 지분을 3%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3%를 초과하는 삼성전자 지분 6.58%를 강제로 매각해야 한다. 이를 대비해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을 늘렸다는 해석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삼성생명 등 금융사를 통한 그룹 지배를 억제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만큼 지배구조에 한 차례 더 변화가 올 수도 있겠다. 일시납이 아닌 연부연납이니 상속세 납부와 연관된 삼성 지배구조 이슈는 앞으로도 쉽게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무종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