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이서영 기자] 재건축 기대감 등의 영향으로 올해 상반기 서울의 노후 아파트값이 신축 아파트보다 2배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6.17 공급대책의 핵심 내용인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방침이 최근 국회 논의 과정에서 백지화되면서 정부가 설익은 정책을 내놔 피해자를 양산하고 재건축 아파트값만 올려놓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4일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조사 통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준공 20년 초과 아파트값은 올해 상반기(1∼6월) 주간 누적 기준 3.06%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준공 5년 이하인 신축이 1.58% 오른 것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서울을 5개 권역으로 나눠서 보면 20년 초과 아파트값은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이 3.78%로 가장 많이 올랐다. 이어 동북권 3.15%, 서남권 2.58%, 서북권 2.13%, 도심권 1.48% 등의 순이었다.
'강남권'으로도 불리는 동남권에는 압구정·대치·서초·반포·잠실동 등의 주요 재건축 단지가 몰려 있다. 이들 단지가 아파트값 상승을 견인한 셈이다. 동북권에는 노원구 상계동 등의 주공아파트를 중심으로 재건축 추진이 활발하고, 서남권은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가 몰려 있다.
일반적으로 신축 아파트값이 더 빨리 오르고 노후 아파트값은 더디게 오르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노후 아파트는 재건축을 통해 새 아파트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에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으면 큰 관심을 받아 가격이 껑충 뛰는 특성이 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 재건축 단지들은 정부가 지난해 6.17대책에서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아파트를 조합설립 인가 이후에 구입하면 입주권을 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이 규제를 피하려 서둘러 조합설립 인가를 받는 등 사업을 서둘러 추진했다.
6.17대책 이후 올해 초까지 강남구 개포동 주공 5·6·7단지를 비롯해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 방배동 신동아, 송파구 송파동 한양2차, 용산구 서빙고동 신동아, 양천구 신정동 수정아파트 등이 재건축 조합설립 인가를 받으며 사업에 속도를 냈다. 압구정동에서는 올 2월 4구역을 시작으로 5·2·3구역 등이 잇달아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이 와중에 지난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재건축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 방침을 백지화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당정은 당시 서울 집값이 급등세를 보이자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값을 잡겠다면서 강력한 수요 억제책으로 실거주 2년 요건을 채우지 않으면 재건축 후에 분양권을 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대책 발표 직후부터 지나친 규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토지거래허가제 등 더욱 강력한 규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 세입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국토위는 상임위 법안 논의 과정에서 '실거주 2년' 의무 조항을 삭제했다.
정부가 설익은 정책을 내놔 오히려 전세난만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온다.실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재건축 아파트로 들어가는 집주인들이 늘면서 애꿎은 세입자들이 쫓겨나게 됐고, 결과적으로 전세 물건이 줄어 전세난이 심화했다는 것이다.
지난 1년 사이 이 규제를 피해 재건축 아파트를 판 사람이 최대 피해자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서울의 평균 아파트값은 지난 1년 사이 2억1774만원(9억2509만원→11억4283만원) 올랐다.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가격 상승 속도가 일반 아파트보다 2배 가까이 빨랐던 것을 생각하면 재건축 아파트 매도자가 치른 기회비용은 이보다 더 크다고 추산할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책을 만들 때는 해당 정책이 국민의 삶에 미칠 단기적·장기적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입안해야 하는데, 이번 정부에서 부동산 대책은 충분한 고려 없이 남발한 측면이 있다"며 "기존의 정책들도 효과를 다시 검토해 필요하다면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