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탄소국경세) 시행법안'을 내놓으면서 국내 기업들이 이익 대부분을 탄소국경세로 납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U는 시행법안에서 탄소국경세를 2026년부터 철강·시멘트·비료·알루미늄·전기 등 5개 분야에 우선 적용하기로 했다. 철강 제품을 수출하는 포스코·현대제철 등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자동차는 부과 대상에서 일단 빠졌다. 그러나 EU는 2035년부터 사실상 휘발유·디젤차를 팔지 못하도록 해 국내 자동차 업계에도 수출 위축이 불가피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탄소국경세 도입 시 온실가스 배출량 1위 포스코와 2위 현대제철의 탄소국경세 합계가 3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최근 EU 배출권 가격이 50달러 수준까지 치솟았음에 비춰보면 국내 산업계 부담은 이같은 전망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날 수도 있다.
EU 탄소세 시행법안이 발표되면서 철강업계의 이익 감소 우려가 커졌다. 포스코의 경우 쇳물을 만드는 현재의 고로를 가동한 지 40~50년 됐고, 현대제철은 이제 겨우 10년 정도 사용했다. 고로의 사용 연한이 100년에 가깝다는 점에서 폐기하기에는 한참 이른 시점이다. 반면 아르셀로미탈 등 유럽 철강 기업들은 고로 사용 연한이 거의 찼다는 점에서 조강 생산 방식의 변화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다.
정부는 EU가 한국의 배출권거래제를 탄소국경세와 동등하게 인정하도록 외교적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중국 등 관련국과의 국제공조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직시해 보자.
일본 정부의 경우 탄소국경세 도입 이전부터 우려했던 분야는 철강이 아닌 자동차 분야였다. 신일본제철(닛폰제철)을 비롯한 일본 철강사들의 EU 수출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EU의 탄소국경세 부과 대상에서 자동차가 빠짐으로써 일본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넷제로)을 이루겠다는 전세계적 구상에 맞추는데 있어 다소나마 여유를 갖게 됐다. 한국 정부와 적극적 공조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기에는 양국의 외교적 분위기 뿐 아니라 직면한 현실에서도 차이가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 역시 EU의 탄소국경세에 맞서 한국과 공조하기에는 환경 규제에 대한 온도차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파리 기후 변화 협약 복귀를 위한 행정 명령에 서명하며 환경문제를 다자주의적 관점에서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이처럼 국제적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정부 대책 보다는 오히려 이번 위기에 앞서 대응해 온 최정우 포스코 회장의 행보에 이목이 쏠린다.
포스코는 수소를 활용해 철강을 만드는 '수소환원제철' 실현을 통해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2050 탄소 중립'을 이미 선언했다. 수소환원제철은 철강석으로부터 철을 추출할 때 필요한 환원제로 기존 석탄이 아닌 수소를 쓰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석탄과 철광석을 한 데 녹이는데 필요한 고로는 물론 소결공장 등 부속설비도 필요 없어진다.
수소환원제철 분야에서 월등한 기술 우위를 차지할 경우, EU의 탄소국경세 부과 등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는 오히려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 바오우그룹, 허베이철강(HBIS), 사강스틸, 신일본제철 등 중국 및 일본 주요 철강사들과의 친환경 철강 제품 기술격차를 벌여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포스코는 가루 형태 철광석을 기반으로 쇳물을 생산하는 파이넥스 기술을 수소환원제철에 적용한 '하이렉스' 공법으로 신일본제철과 기술 차별화를 두고 있다. 그간 최 회장은 저탄소·친환경으로 대변되는 메가트렌드 전환 국면에서 선도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강조해 왔다.
물론, 이같은 친환경 조강 공법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용 연한이 꽉 찬 유럽 철강사에 비해 아직 멀쩡한 고로 등의 설비를 모조리 바꾸려면 당장 직면하게 될 이익 구조 하락을 감내해야 한다.
보다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 기존 용광로 형태의 고로를 전기로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기 비용의 증가, 녹색(ESG)채권 발행에 있어서의 금융조달 비용 증가 등을 기업에게만 떠맡겨서는 안된다.
EU의 탄소국경세가 철강 등에 먼저 적용됐지만, 앞으로 자동차, 반도체, IT제품 등 더 많은 품목으로 부과 대상이 확대될 경우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중인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LG전자 등 우리 기업들의 수출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EU의 환경 규제에 먼저 직면하게 된 포스코의 해법은 우리 기업들이 앞으로 맞닥뜨릴수 있는 위기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도 유용한 선례가 될 것이다.
기업시장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