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시기이자 인사철이다. 세밑을 앞두고 각 기업들이 속속 발표하는 인사 면면을 들여다보면 기업들의 고민과 앞으로 나갈 방향성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올해 연말 인사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1980년대생이 주요 기업 대표나 임원으로 전진 배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네이버다. 우리나라 대표 IT기업인 네이버는 지난 17일 한성숙 대표 후임으로 1981년생 최수연 글로벌사업지원 책임리더를 내정했다.
최 내정자는 2005년 NHN(옛 네이버) 홍보마케팅팀으로 입사했지만 4년 뒤 로스쿨 진학을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변호사 자격증을 딴 뒤 법무법인 율촌에서 M&A(인수·합병) 업무를 담당하다가 네이버에 다시 합류한 것은 2년 전 일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던 직원이 올해 5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뒤숭숭한 내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측면도 있겠지만, M&A 전문가인 최 내정자 발탁을 통해 글로벌 사업에 가속 페달을 밟기 위한 네이버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앞서 이달 3일 단행된 미래에셋금융그룹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한 김연추 미래에셋증권 파생부문 대표도 1981년생이다. 김 전무는 지난 2018년 한국투자증권에서 미래에셋증권으로 이직하면서 차장에서 상무보로 임명돼 화제가 됐다.
미래에셋그룹의 경우 이번 인사에서 임원 승진자 50명 중 8명이 80년대생일 정도로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세대교체를 통해 글로벌 사업환경 변화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주요 기업 임원 자리에 1980년대생이 전면에 배치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 순혈주의와 연공서열 중심의 기업문화에서 벗어나 능력을 우선시 하는 성과주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시가 총액 50위 내 기업의 올해 3분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980년대생 임원은 5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3분기 31명에서 1년 사이 60% 증가한 셈이다.
또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의 선두주자인 1980년대생 임원들의 경우 글로벌 마인드와 디지털 역량 등으로 무장됐다는 점도 이들을 발탁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글로벌 산업 생태계’의 변화 속도를 감안할 때 기업의 이런 선택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선 ‘잘하고 있던 것’만 고집할 수 있는 시대가 저물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을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해 화제가 됐다.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1980년대생 임원 발탁은 '파격인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 역시 최근 화두가 된 MZ세대를 잡기 위해 단지 생각이 아닌 실행이 필요한 시점에 다다른 셈이다.
기업에서 만큼은 '80년대생이 온다'가 아니라 1980년대생이 이미 왔다.
금융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