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원자재가격 급등에 高환율, 35조~50조 추경 논의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연 2%대 소비자물가 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개월째 연속 3%대를 기록한 것은 물론, 전문가들의 연간 물가 전망치가 3개월 새 0.6%p 높아진 2.7%까지 올라섰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세, 고환율, 30조원 넘는 추경 논의 등은 물가 상승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상반기 물가상승압력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발언까지 내놨다.
9일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2월 경제동향'에 따르면 국내 경제 전문가 1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이들이 예상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는 2.7%로 조사됐다. 불과 3개월 전인 지난해 10월에는 2%대 초반(2.1%)으로 예상했으나, 3개월 만에 0.6%p 올려잡은 것이다. 상반기까지는 3%를 웃돌다가, 4분기 이후 2% 내외로 낮아진다는 시나리오다.
이번 경제동향에서 대부분 거시경제지표는 지난해 10월 전망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물가 전망은 예외였다. KDI는 "소비자물가는 전반적으로 높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면서 "국제유가가 시차를 두고 반영돼 지난달 석유류 가격 오름세가 줄었으나, 최근 유가가 재차 올라서며 물가상승압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지난달 3.6%(전년동월대비) 상승했다. 이는 작년 10월(3.2%) 9년8개월 만에 3%대로 진입한 뒤 넉 달째 3%대 기록이다. 물가가 4개월 연속 3%대를 기록한 것 역시 10여년 만이다. 특히 최근 국내 물가를 둘러싼 대내외적 리스크가 산재해 언제든지 월 4%대 진입도 가능하다는 게 경제계 안팎의 전망이다.
무엇보다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급등세에 따른 우려가 가장 크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을 보면 두바이유 가격은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배럴당 59.80달러에 불과했지만, 8일 기준 90.42달러를 기록했다. 한 달 새 무려 51.2%가 뛰었다. 같은 기간 브렌트유는 61.1% 올랐으며,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66.8% 상승했다.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FFPI, 135.7)도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은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번 에너지 가격 상승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 및 미국·유럽연합(EU) 등 서방국가 간 갈등이 깊어지는 데서 기인하고 있는데다 충돌 긴장감은 연일 고조되고 있다. 이에 글로벌 주요 금융기관들은 잇따라 유가 전망치를 높이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조만간 120달러, JP모건은 1분기 150달러선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유가 급등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어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수입물가는 더욱 올라갈 전망이다. 또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빨라진 긴축 기조에 환율 역시 심리적 경계선인 달러당 1200원선까지 올라섰다. 이런 이유로 최근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14년 만에 2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으며, 적자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국내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추경 논의 역시 유동성 확대를 불러와 물가 상승을 더욱 자극할 수 있는 불안 요인 중 하나다. 정부는 이번 14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이중 11조3000억원을 적자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여야가 주장하는 35조~50조원의 추경 등 '돈풀기'가 추가로 자행된다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물가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자 정부도 상반기 물가를 잡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문제가 심각하며, 2~3월에 금방잡힐 것 같지 않다"면서 "상반기에는 조금 어렵더라도 하반기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내려와 정부 목표 수준을 달성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