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주주총회에서도 이변 없이 종료
"지배구조 이슈 부각은 그룹 입장서 부담"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금융지주사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과 의결권자문사들이 이사 선임 안건에 대거 반대표를 던지면서 그룹 지배구조 향방에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민연금과 의결권자문사들이 금융지주사 주총에서 유독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만큼 실제 이사 선임이 불발될 것이란 관측은 많지 않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오는 24일 열릴 신한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박안순·변양호·성재호·이윤재·허용학 사외이사를 재선임하는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예정이다. 또 성재호 이사를 감사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에 대해서도 반대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신한금융지주 지분 8.7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국민연금 측은 이들 사외이사가 기업가치 훼손에 대한 감독의무를 소홀히했다고 판단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지난 2020년 초 채용비리 관련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벗지 못한 상태에서 이사회 지지로 연임에 성공한 것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신한은행장 시절 신입행원 채용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아 재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11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이 이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지난 2019년 핵심 계열사인 신한금융투자가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손실 사태에 휘말렸던 것도 국민연금의 반대 결정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이다. 역대 최악의 펀드 사기사건인 라임사태에 그룹이 휘말린 것을 두고 경영진과 이사회는 내부통제 부실, 감시시스템 미흡 등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기로 결정한 박안순 이사는 2017년 3월부터, 변양호·성재호·이윤재·허용학 이사는 2019년 3월부터 신한금융 이사회에 참여했다.
같은 이유로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사인 ISS도 주주들에게 신한금융의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권고했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에 이어 해외 투자자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ISS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신한금융으로선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신한금융의 외국인 투자자비율은 62.09%다.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두고 ISS의 반대표를 받은 곳은 KB금융·하나금융·우리금융 등도 마찬가지다. 하나금융 주총과 관련해선 함영주 회장 후보자의 회장 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라고 권고했다. 함 후보자가 채용비리,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사법리스크를 벗지 못했다는 게 반대 근거다. 앞서 함 후보자는 DLF 중징계 취소소송에서 패소해 항소한 상황이다. 채용비리와 관련해서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최근 검찰이 항소했다.
ISS는 또 허윤·이정원·양동훈 하나금융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도 반대했다. 해당 사외이사들은 하나금융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위원들로, 함 후보자를 차기 회장 후보로 지명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ISS 측 의견이다. 특히, 하나금융은 외국인 주주 비율이 71.06%로 주요 금융지주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는 점이 부담이다.
우리금융에 대해서는 신규 선임하는 송수영 사외이사를 제외한 기존 이사진의 재선임 안건을 모두 반대했다. 이원덕 우리은행장 내정자의 비상임이사 선임도 반대를 권했다. ISS 측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DLF·라임펀드 사태 관련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음에도 이들 이사진이 손 회장을 지지한 것은 잘못됐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ISS 의견에 따라 이원덕 내정자의 비상임이사 선임이 불발될 경우 지배구조 강화 계획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KB금융과 관련해선 그룹 노동조합협의회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 선임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 KB노조협의회가 김영수 전 수출입은행장 부행장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것을 두고 ISS 측은 "노조가 이사 추가를 정당화하기 위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노조추천이사제가 민간 금융회사에 처음 도입될지를 두고 관심이 모였으나 ISS 외 다수 의결권자문사들이 반대 의견을 내면서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주총을 앞두고 무더기 반대표가 나오면서 금융권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사실상 현 이사진에 반대한다는 의미여서 그룹 지배구조 이슈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주총 결과만 놓고 보면 과거 국민연금과 ISS의 반대에도 대부분의 안건이 통과됐던 만큼 올해 상황도 비슷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특히, 코로나19 등 어려운 환경에서 금융지주사들이 역대 최대 실적을 내는 등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어 지지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이 오랜 기간 기업을 이끌며 지배구조와 지지기반을 안정적으로 다져놓은 것도 무난한 주총을 예상하게 하는 요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반대표가 나오면 지배구조 이슈가 부각될 수 있어 그룹 입장에서는 당연히 부담스러운 것은 맞으나 금융지주사 주주총회는 이변 없이 종료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해외 투자자들 비중이 높지만 그 중에서도 현 경영진에 우호적인 세력이 많아 유독 국민연금이나 의결권자문사의 입김이 세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