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은행, 한도·금리 경쟁력에서 크게 뒤져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시중의 '갈 곳을 잃은 돈'이 급증하는 가운데,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을 중심으로 '파킹통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은행권에선 주식·가상화폐(암호화폐) 등에 대한 투자 매력이 떨어지면서 요구불예금 증가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면서도 여유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인터넷은행을 경계하는 눈치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 25일 기준 705조7374억원으로, 전월 말과 견줘 8조6634억원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요구불예금은 예금자가 원할 때 언제든지 찾아 쓸 수 있는 예금으로, 투자를 위한 대기 성격이 강하다. 요구불예금이 통장에 쌓인다는 것은 주식이나 가상화폐(암호화폐) 등 투자 여건이 좋지 않아 '갈 곳을 잃은 뭉칫돈'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1월말 700조3291억원에서 지난달 717조6545억원으로 급증한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증감을 반복하고 있지만,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더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등 불확실성이 나날이 커지면서 당분간 증가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은행권의 전망이다.
은행권에선 대기자금 확보를 위해 파킹통장 관련 프로모션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하면서도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파킹통장 판매는 외국계 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저축은행 등이 특히 적극적이다.
시중은행에 비해 영업망이 부족하기 때문에 높은 금리 혜택을 내세워 고객 유치전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정기예금에 돈을 묶어두기 부담스러운 투자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충성고객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저원가성 예금을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 금융소비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상품은 토스뱅크의 '토스뱅크통장'이다. 이 상품은 세전 연 2% 이자를 지급하는데, 최대 한도 1억원까지 2%의 금리가 쌓인다. 고객이 '매일 이자 받기' 기능을 선택하면 매일 남은 잔액을 기준으로 이자가 쌓이는 '일 복리' 구조이며, 출금도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 할 수 있다.
0%대 금리를 제공하는 기존 은행의 수시입출금 통장에 비해 높은 금리 경쟁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토스뱅크의 수신 잔액이 최근 17조원을 돌파했다. 토스뱅크에 가입한 고객 수는 지난 21일 기준 235만2202명이었으며, 이 중 205만5255명이 토스뱅크 통장을 만들었다.
케이뱅크가 선보인 '플러스박스' 역시 인기 상품 중 하나다. 최대 3억원까지 연 1.0% 단일 금리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인데, 원하는 용도별로 최대 10개까지 '통장 쪼개기'가 가능하다.
카카오뱅크의 대표 파킹통장 상품인 '세이프박스'는 최대 보관 한도가 1억원, 금리는 연 1.1%다. 이들 은행은 지난해 말 금리 인상과 함께 한도 확대에 나선 바 있다.
이처럼 인터넷은행들이 파킹통장 등 수신상품에 공을 들이면서 시중은행에 쌓인 대기성 자금이 인터넷은행들로 옮겨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시중은행에서도 비슷한 상품을 찾을 수 있지만, 한도와 금리면에서 인터넷은행의 경쟁력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점에서 요구불예금의 증가세는 크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무조건 연 2.0%' 수시입출금 통장 등을 내놓는 인터넷은행들이 시중의 여유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긴장 요소로 꼽히는 만큼 영업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