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선거철 마다 우리 국민들은 희망찬 미래에 대한 약속과 기대감에 부푼 가슴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실질적으로 크게 변함이 없는 현실에 낙담하며 자괴감까지 느끼게 되는 악순환에 익숙해져버렸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장 선거 때마다 패기 넘치는 목소리로 더 나은 미래를 자신하는 후보들, 하지만 그들이 내거는 수많은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전락해버리는 현실에 헛웃음을 지은 경험은 우리 국민들 누구나 한번쯤 겪어야하는 성장 과정처럼 당연한 사항이 돼버렸다.
최근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 또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20년전 노무현 정권에서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추진된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기 이전한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경기부양 등의 면밀한 효과 분석이나 이를 보완하기 위한 개선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 없이 선거철만 되면 전국 각 지역마다 어디를 유치하겠다 라는 선거용 표심획득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지난 대선 기간, 윤석열 당선인이 유세 당시 산업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한 공약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2012~2019년 기간동안 153개의 공공기관이 전국 각 지역으로 이전을 완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에 공공기관 이전이 실질적으로 기여를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는다. 2020년 국토연구원에서 수행한 ’혁신도시 성과평가 및 정책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이전에 따른 인구 유입효과나 지역 경쟁력 개선효과는 미미한 수준이었으며, 그마저도 전국 혁신도시 앞 정주여건 확보 실패 등에 따라 단기적 현상에 그쳤다. 지역별 실질 총소득 증가율을 보더라도, 2013~2016년간 혁신도시의 증가율은 12.7%로, 수도권 16.0% 및 전국 14.4%의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한전, 한수원과 같은 거대 공기업을 이전했음에도 이와 같은 결과가 초래되었는데, 남아있는 공공기관 몇 개 더 이전을 한다고 해서 유의미한 실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오히려 지금은 기존 정책수행 내역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과 성과 분석을 통해 기존과는 차별화된,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강구하는게 옳은 방향이 아닐까?
공공기관 임직원 입장에서 바라보는 현 상황은 더욱 답답하다. 지난 수년간 과거 정권의 공공부문 탄압, 임금상승률 제한 및 복지 삭감 등으로 프라이빗(Private) 부문으로 인력이탈 현상도 가속화되는 가운데, 이들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던 자부심,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일한다는 마지막 보루까지 놓아버리게 되는 상황이다. 엄밀히 말해, 정부에서 국가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공공기관의 본점을 이전하겠다고 하면 임직원들은 개개인의 불편과 피해를 어느 정도 감수할 각오가 있겠지만, 공공기관 지방이전 같이 본래의 추진 목적도 불분명한데 실질적인 효과도 거양하지 못한 정책으로 개개인에게 피해를 감수하라고 하면 그에 동조를 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싶다.
특히, 국책은행의 경우 국가의 정책금융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서 시장과 경쟁하고 수익을 창출해야하는 면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받아 1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당시 대상에서 제외된 바 있다. 최근까지도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중소기업 앞 정책자금 공급, 기간산업안정기금 설립, 시장안정화 SPC설립 등 국가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는데, 이에 대한 노고 치하는커녕 기관 자체의 역할은 물론이요 정책금융의 필요성을 전면으로 부정하며 선거용 표심획득을 위한 희생양을 삼으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그저 답답한 한숨을 내쉴 뿐이다. 러시아발 국외 정국 불안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도 심화되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정권 교체에 따라 다각적인 차원에서 향후 국정과제들을 검토해야하는 시점에서 과연 국책은행의 지방이전 이야기는 대체 어떤 배경에서 흘러나와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하고 있게 된 것인가? 국가 전체적인 관점에서의 고민은 만무하고, 오히려 특정 지역 내부의 갈등과 목소리들을 잠재우기 위한 ‘지역 이기주의’에 의한 움직임이 아닌지 의문스럽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고민해야할 시점으로 보인다. 일본, 독일과 같은 해외 선진국들의 사례를 분석하여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독자적인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예컨대, 국가의 큰 흐름을 보완해야하는 부분은 대표적인 ‘종합’정책금융기관을 통해서 수행하되, 지역별 발전 정책의 주체는 지역의 사정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지자체와 ‘지역’정책금융기관을 활용하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톱다운(Top-down) 형식의 일방적인 정책추진보다는 지자체와 민간부문 앞 자율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종합’정책금융기관을 통한 규모의 경제 효과를 향유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꺼내본 것인데, 이게 정답이 아니더라도 기존 접근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각을 도입해봐도 좋은 시점이 아닐까.
지금은 신집권 세력이 향후 5년간 국정을 어떻게 운영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중요한 시점이다. 선거 기간 동안 언급한 공약을 지키는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나, 면밀한 검토결과 국가를 위해 다른 선택지가 낫다고 판단될 때에는 이를 인정할 줄도 아는 모습에 국민들은 더욱 많은 지지와 응원을 보내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특히 과거 정권에서의 불통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에 많은 유권자들이 돌아섰던 점을 감안해보면, 지금은 당장 선거철 표심 획득이나 과거 발언에 사로잡혀있기 보다 우리나라, 국가를 위한 심도있는 고민을 통해 실질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힘을 합치는게 필요한 시점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