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진 관치금융 그림자에···산업경쟁력↓·시장왜곡↑
윤석열 정부가 5월 10일 닻을 올렸다. 출항한 윤석열 정부 앞에 놓인 경제 여건은 녹록지 않다. 물가·환율·금리가 모두 치솟는 '3고(高)' 현상이 경제정책 선택지의 폭을 좁히고 있다. 1900조원에 육박한 가계빚은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지난 2년간의 경제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타격이 컸던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어느 때보다 발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국정과제에서 내놓은 윤석열 정부의 경제·금융정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막대한 재정 투입에 따른 나라빚 폭증 우려와 가계빚·부동산시장 자극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어느 때보다 세밀한 경제·금융정책이 필요한 가운데,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될 주요 경제과제를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윤석열 정부가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추진할 핵심 정책들은 민간 금융권의 동원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관치금융'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 경계선은 모호하지만, 관치금융은 금융사의 자율경영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을 낳고, 결국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코로나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 재연장, 대환대출 등 소상공인 손실보상 방안이 대표적인 예다. 금융권은 지난 2020년 4월부터 2년여간 소상공인·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올해 1월 말까지 금융권의 코로나대출 지원 규모는 133조4000억원에 달한다.
애초 지난 3월 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코로나대출 지원조치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요청으로 오는 9월 말까지로 한 차례 더 연장됐다. 대출 상환이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금융권에서는 연착륙이 어려워지는 부작용을 호소했지만 소상공인 지원이 윤석열 정부의 핵심 공약이었던 만큼 조치 연장에 대한 인수위의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실대출 리스크가 커지고 있지만 이 조치가 한 차례 더 연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원조치 종료에 맞춰 부실대출을 털어내고, 연착륙 방안을 준비해야 할 금융회사 입장에선 불확실한 상황이 기약 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오는 12일쯤 발표될 예정인 30조원 중반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과 소상공인 손실보상 금융지원책에도 민간 금융권의 동원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소상공인이 카드, 캐피탈,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 고금리로 받은 대출을 은행 대출로 대환해주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2금융권을 이용한 소상공인은 소득·신용도가 낮아 부실 위험이 크다. 이를 위해 은행들은 대환대출에 대한 정부 보증비율이 90~100%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 재원에 한계가 있어 보증비율이 높게 산정될 가능성은 낮다. 결국 은행이 부실대출 위험을 떠안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생색은 정부가 내고 희생은 은행이 한다"는 볼멘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온다.
최대 1억원의 목돈을 만들어주는 '청년도약계좌'도 은행이 이자부담을 지는 구조다. 청년도약계좌는 청년이 10년 동안 월 70만원(청년 30만~60만원+정부 10만~40만원)씩 저축하면 만기 때 1억원을 만들어주는 정책금융상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제시했던 공약을 보면 청년도약계좌에 적용되는 금리는 '연 3.5% 복리(예시)'다. 월 70만원씩 연 3.5%의 복리를 적용한 후 비과세 혜택까지 받으면 만기 때 1억원의 목돈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재 은행권은 장기·복리적금을 거의 운영하지 않는다. 장기·복리적금에 따른 이자부담이 크기 때문인데, 청년도약계좌의 경우 대통령 공약에 따른 정책인 만큼 은행들이 이자부담을 모두 부담하면서 계좌를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권에서는 청년도약계좌에 들어가는 1년 예산만 7조56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 연간 순이익(2조~4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지원규모가 상당한 만큼 애초 무리한 공약이었다는 금융권의 목소리는 국정과제를 내놓는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다.
금융권은 역대 정권에서 되풀이되던 관치금융이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어질까 우려하는 눈치다. 앞서 시행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에 이어 금융권 동원을 전제로 하는 각종 지원대책을 핵심 과제로 꺼내놓은 데서 관치금융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산업은 소비자 보호가 중요한 산업인 만큼 규제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금융산업 경쟁력을 떨어트리고 시장 왜곡을 불러온다는 부작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언제 개입될지 모를 '관치'는 경영진들이 금융회사를 경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불확실한 요인'으로 꼽힌다. 자연스레 투자자 기피 현상이 이뤄지면서 금융산업 발전 속도도 떨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금융권에서는 디지털·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심으로 금융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관치금융을 지양하고 금융사의 자율경영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융을 동원하는 것이 아닌 경쟁력을 스스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관치금융은 규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금융회사들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것을 가로막고 기존의 손쉬운 사업에만 안주하게 한다"며 "글로벌 금융회사들과 견줄 수 있도록 몸집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금융회사는 수익을 국가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하도록 윈윈하는 시장중심적 산업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