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일 "중앙은행이 디지털 혁신, 기후 변화, 사회적 책임에 대응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면서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2022년 BOK국제콘퍼런스' 개회사에서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의 충격과 그로부터의 회복이 계층별·부문별 불균등하게 나타나는 양극화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중앙은행의 사회적 책임 또한 그 요구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 시대 상황에 대해 "코로나 위기 이후로는 경제 양극화가 확대되고, 디지털·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 범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더욱 넓어졌다"면서 "특히 경제활동 재개로 인한 총수요의 회복은 경제 여러 부문에서의 공급 제약과 맞물리면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고, 지난 수개월 동안 근원·장기·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목표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처럼 물가안정이라는 기본 역할에만 집중하면 될 것인지, 중앙은행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사회적 책임은 물론, 현재 각국 중앙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을 추진 중이거나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녹색성장을 위해서도 정책수단의 개발과 이행을 구체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예상치 못한 높은 인플레이션의 상황이 진정됐을 때 장기 저성장 흐름이 나타날 것인지, 이때 전통적인 통화정책들을 활용할 수 있을지, 효과적인 비전통적 정책수단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등 인구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는 일부 신흥국에게 있어 저물가와 저성장 환경이 도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폴 크루그먼 교수가 선진국 중앙은행에 조언한 것처럼 여타 신흥국에도 '무책임할 정도로 확실하게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겠다고) 약속해야만 하는지 궁금하다. 지난 10여년간 중앙은행의 실제 자산규모 변화로 보면 신흥국은 그러한 사치를 누릴 여유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규모의 글로벌 유동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향후 개별 신흥국이 구조적 저성장 위험에 직면했을 때 코로나 위기 극복 과정에서와 비슷한 수준의 확장적 정책이 이뤄진다면 환율과 자본 흐름 및 인플레이션 기대에 미치는 함의는 사뭇 다를 것"이라면서 "자국의 저물가·저성장 국면에 대비한 신흥국만의 효과적인 비전통적 정책수단은 무엇인지 분명한 답을 찾기 쉽지 않으며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끝으로 "300년이 넘게 중앙은행이 걸어온 역사는 바로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이라면서 "이번 콘퍼런스가 우리 앞에 놓인 여러 도전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공유함으로써 코로나 위기 이후의 대전환기에 중앙은행이 사회적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