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테일러 공장 착공식·'선 밸리 콘퍼런스' 등 글로벌 행보 '관심'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새 정부 출범 이후 본격적으로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및 만찬 참석을 시작으로 6년 만에 삼성호암상 시상식에도 참석하는 등 공식 석상에 잇달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재편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 부회장이 향후 대외 행보를 본격화하며 미래 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일 재계에 따르면 가석방 신분으로 그간 외부 공식 활동을 자제해왔던 이 부회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2년도 제32회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는 등 최근 대내외 경영 행보를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과거 호암상 시상식에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해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 총수 일가가 참석했으나 2016년에는 이 부회장만 참석했고 2017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로 지난해까지는 이 부회장도 불참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후 8시경까지 이어진 수상자들과의 만찬 자리에도 함께해 축하와 격려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사법리스크로 인한 경영활동 제약 등에도 오랜만에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선대의 '인재제일' 철학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울러 이 부회장이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미래 준비를 위해 본격적인 경영 정상화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및 외빈 초청 만찬 참석을 시작으로 대내외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20일엔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방문 및 생산라인 견학에서 동행 안내를 하며 민간 외교관으로서 한미 반도체 동맹의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21일에도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퀄컴 등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났다.
30일엔 방한 중인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와 삼성 서초사옥에서 만나 두 회사 간의 반도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과 겔싱어 CEO는 이날 서울 삼성 서초사옥에서 만나 차세대 메모리, 팹리스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PC 및 모바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리 최강자'인 삼성전자와 '중앙처리장치(CPU) 최강자'인 인텔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경쟁자이자 협력 동반자다. 인텔의 주력제품인 CPU(중앙처리장치)를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데 이어 차세대 메모리반도체로 꼽히는 CSL 기반 메모리 분야에서도 2019년부터 인텔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기술 및 플랫폼을 공유해왔다.
특히 지난해 3월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향후 양사가 이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인텔이 주력 제품인 CPU는 자체 생산하고, 나머지 칩셋 등 제품은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등에 생산을 맡기는 등 협력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한다.
◇ 글로벌 산업 지형 변화 위기감 반영···M&A 등 대형 투자 재시동?
이 같은 이 부회장의 행보는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과 함께 급변하는 산업 지형에 대한 엄중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삼성은 2026년까지 5년간 450조원을 미래 산업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가운데 300조원을 반도체에 투입해 메모리, 팹리스(반도체 설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3대 분야에서 반도체 초강대국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이번 대규모 투자 배경에 대해 "그냥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다. 앞만 보고 가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미국 출장을 다녀온 뒤 "현장의 목소리와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니 마음이 무겁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맞물려 촉발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위기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국우선주의 경쟁을 심화시켰다. 삼성으로서도 메모리 부문에선 중국에 추격당하고 있고 파운드리는 대만 TSMC에 뒤처진 상황이다. 퀄컴과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이 주도하는 팹리스 시장에선 사실상 존재감이 미미하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는 대형 인수합병(M&A) 등 대규모 투자 경쟁에 불이 붙었다. 경쟁사인 인텔과 SK하이닉스는 최근 각각 54억 달러 의 이스라엘 파운드리 기업 타워세미컨덕터 인수, 90억 달러의 인텔 낸드부문 인수 계약 등을 체결해 인수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매물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설계 1위 기업 영국 ARM 인수에는 인텔, SK하이닉스에 이어 퀄컴까지 뛰어들며 인수 의사를 밝혔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1∼3월)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만 126조원을 쥐고 서도 수년째 의미 있는 M&A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실제 삼성의 대형 M&A는 2017년 초 미국 전자장비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80억 달러(약 9조4000억원)에 인수한 뒤로 전무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이 부회장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이 글로벌 협력 모델을 발굴하고 비즈니스를 넓혀가는 발판이 됐던 이 부회장의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향후 글로벌 경영 확대와 국제 비즈니스 무대 복귀를 통해 그간 중단됐던 삼성의 대형 인수·합병(M&A) 등 투자 행보에 재시동을 걸지 주목하고 있다. 우선 내달 중 열릴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서 추진하는 170억달러(약 21조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착공식에 이 부회장이 참석할지 여부도 재계 관심사다. 특히 착공식에는 텍사스주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보이며 바이든 대통령의 참석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어 한미 정상회담 이후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또 이 부회장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복원하기 위해 매년 7월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리는 '앨런&코 콘퍼런스'에 6년 만에 참석할지도 관심이 쏠린다. 앨런&코 콘퍼런스는 미국 투자은행 앨런&컴퍼니가 1983년부터 주최해온 국제 비즈니스 회의로, 지명을 따 '선 밸리 콘퍼런스'라는 명칭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뉴스코퍼레이션, 타임워너 등 글로벌 미디어와 정보기술(IT) 업계 거물들이 주로 초청받는 행사다. 선 밸리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서 굵직한 비즈니스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비공개 행사라 이 회의에서 논의되는 내용이 100% 공개되진 않지만 기업 CEO들이 서로 교류하며 회사의 M&A나 파트너십 등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상무 시절인 2002년부터 거의 매년 이 행사에 참석했지만 2017년부터는 사법리스크로 인해 행사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글로벌 협력 시스템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이 완성되는 시기에 이 부회장이 선 밸리 콘퍼런스 등 사교 행사에 복귀해 오랜 기간 소원해진 글로벌 네트워크를 복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