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兆 금융지원, 은행에 부담 떠넘기기?···'무늬만 자율'인 기준에 혼란 가중
125兆 금융지원, 은행에 부담 떠넘기기?···'무늬만 자율'인 기준에 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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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 부실에 선제 대응" 수긍···'방식'엔 강한 불만
'의무' 성격 띤 '자율 지원' 요구 "관치논란 의식했나?"
생색은 정부, 부담은 은행···"구체적으로 협조 구해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브리핑에서 기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브리핑에서 기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정부가 지난 14일 취약 청년·소상공인을 위해 내놓은 '민생안정을 위한 금융부문 프로그램(125조원+α)'을 놓고 은행권에 요구한 '자율 지원'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은행권은 정부가 원하는 자율 지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은행들은 이번 조치의 성격을 훗날 정부가 재정을 통해 떠안을 수도 있는 잠재적 금융부실을 최소화 하기 위한 민관 공조를 통한 선제적 대응으로 규정하고, 그 필요성과 은행의 역할에 대해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금융당국이 관치논란 등을 의식해 구체적인 기준 제시를 머뭇거리거나 행정편의주의에 빠져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민심생안정대책은 크게 △주거래금융기관 책임관리를 통한 소상공인 만기연장·상환유예 재연장 △30조원 규모 새출발기금 운영 및 연체차주 원금 최대 90% 감면 △45조원 규모 안심전환대출(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고정금리) 등으로 진행된다.

이 중 은행권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대책은 '주거래금융기관 책임관리'를 통한 지원방안이다. 앞서 정부는 오는 9월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종료되더라도 해당 조치 재연장을 원하는 소상공인에 대해 은행이 자율적으로 90~95%를 재연장하란 지침을 내렸다.

이같은 지침은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 해당 대출에 대해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시각에서 비롯됐다. 당국이 언급한 '주거래금융기관 책임관리'도 같은 맥락이다. 대출상환이 어려워진 취약차주에 대해 해당 대출을 빌려준 각 은행이 자체적으로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에 은행들은 소상공인 등 취약차주에 대한 자체적인 만기연장·상환유예 재연장 방안과 원금·이자감면 방안 등을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날 성실하게 빚을 갚은 신용등급 7구간 이하, 고위험 다중채무자 등에 대해 기존 개인신용대출을 연장하거나 재약정할 때 약정금리가 6%를 넘길 경우 초과하는 이자 금액을 대출원금 상환용으로 돌리는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 앞에 대출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 앞에 대출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연합뉴스)

다른 은행들도 취약차주 빚 부담을 줄이고, 만기연장·상환유예 재연장 등의 다양한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지만 지원 대상과 규모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원대상 선정 기준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어 당국이 원하는 수준의 지원 규모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특히,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의 경우 당국이 은행 '자율'에 맡기겠다면서 재연장 비율로 '90~95%'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 것도 혼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이미 '자율' 아닌 '의무' 성격을 띤 대책이지만 정작 가이드라인이 없으니 은행 자체적으로 지원안을 확정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은행들은 당국이 제시한 '90~95%'란 수치가 차주 기준인지, 만기연장·상환유예 원리금 기준인지 등도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한 은행 관계자는 "대책 발표 이후 당국의 지침이 무슨 의미인지, 어느 정도의 지원 규모를 원하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라며 "자율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당국이 마련한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은행이 먼저 지원방안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고 눈치만 보고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민생안정대책인 새출발기금도 부담 요인이다. 당국은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을 통해 은행이 보유한 부실(우려) 채권을 매입하고, 해당 대출에 대해 △최대 1~3년 거치기간 △최대 10~20년 장기·분할상환 △대출금리 인하 등의 채무조정을 시행할 예정이다. 또 해당 대출 중 연체가 90일을 넘길 정도로 부실화된 경우 원금의 60~90%를 감면하기로 했다.

새출발기금은 은행 출연 없이 추가경정예산안(추경)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자체 재원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캠코에서 은행이 보유한 부실대출을 시장가격으로 매입할 예정인 만큼 '주거래금융기관 책임관리제도'에 따른 자율적 지원방안보다는 은행 부담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당국과 은행이 부실대출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를 경우 은행에는 손실이 커질 수 있다. 은행에선 상환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대출이지만 당국 기준에 따라 새출발기금에 매각해야 한다면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1·2금융권의 변동금리(혼합형 포함) 주담대를 장기·고정금리 정책모기지로 전환해주는 '안심전환대출'도 은행 대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국은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총 45조원(올해 25조원+내년 20조원) 규모의 안심전환대출을 공급할 예정이다. 금리상승기에 취약차주의 금리부담을 낮추기 위해서인데, 4% 초반대 금리로 이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취약차주 입장에서는 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결국 은행 대출을 유동화대출로 대환하는 구조인 만큼 은행 자산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15년과 2020년 안심전환대출이 시행됐을 당시에도 은행 대출자산이 상당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당국의 '이자장사' 비판에 금리상승기임에도 대출금리를 앞다퉈 내린 은행권은 대출자산마저 감소하는 '이중고'에 놓이게 된다.

이번 민생금융대책으로 은행권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면서 정부가 취약차주 관리책임을 은행에 과도하게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취약차주 금융지원을 시작으로 은행권의 고통분담 요구가 본격화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대출자들이 많고, 나중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들기 전에 취약차주를 지원해야 한다는 정부의 방향성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결국 민간 금융회사들이 고통을 분담하는 구조로, 생색은 정부가 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금융회사들이 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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