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정치권·당국 압박에도 잇속 챙기기
고객 이탈 우려 편의 '뒷전'···업권별로 시각차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민생경제가 날로 악화하자 취약차주 지원 차원에서 '대환대출 플랫폼'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금융산업의 플랫폼화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대환대출 플랫폼 재논의 동력도 커졌지만 금융사를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 또한 여전하다.
대환대출 플랫폼 출시까지 적잖은 진통이 예상되면서 정작 취약차주 등 금융소비자들의 편익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플랫폼은 원하면서 대환대출 플랫폼은 꺼리는 은행들의 속사정은 뭘까?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플랫폼을 통한 금융상품 비교·추천서비스 허용 범위를 대폭 확대한 데 이어 최근 정치권이 금융권에 '고금리→저금리' 인프라 구축을 요구하면서 대환대출 플랫폼 재추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대환대출 플랫폼은 소비자가 각 금융회사가 보유한 대출상품을 한눈에 비교하고 더 유리한 대출로 쉽게 갈아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다. 연소득, 재산 등을 기입하면 금융사별로 제공하는 대출상품의 금리, 한도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대출자들의 편익이 커질 것이란 평가다.
현재도 일부 핀테크사가 대출비교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지만 시중은행 등 은행권의 참여가 저조한 데다 직접 대환까지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한계가 있었다. 더 낮은 금리의 상품을 알아보기 위해 플랫폼을 이용했다가 오히려 금리가 더 높은 2금융권 상품을 추천받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는 이용자들의 후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대출비교 서비스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전 은행이 참여하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복합경제위기 속에서 민생경제가 악화하자 정치권의 압박도 커지고 있다.
앞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고금리 대출을 받는 국민이 비대면 원스톱으로 편리하고 안전하게 저금리로 이동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금융권에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환대출 플랫폼에 대한 은행 반발 또한 만만치 않다. 은행들은 자체 플랫폼 경쟁력 높이기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제3의 플랫폼에 고객을 빼앗길까 우려하는 눈치다. 고객 활용도가 높은 대환대출 플랫폼을 중심으로 금융상품 시장이 재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빅테크·핀테크 플랫폼에서 예금·보험·펀드·P2P 상품에 대한 비교·추천서비스를 가능하도록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 은행권 반발이 거센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구나 대출의 경우 수익과 직결되는 만큼 플랫폼을 통한 고객 이탈이 수익성이 치명적일 수 있다. 앞서 금융위가 지난해 초 대환대출 플랫폼 사업을 추진하다가 잠정 중단했던 것도 은행들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오른 후 부동산·가계대출 시장이 안정화됐듯 정부 대책의 효과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금리"라며 "사람들은 금리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인데, 대환대출 플랫폼을 통해 금리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은행 입장에서는 그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은행권이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반대의 주장을 하기도 한다. 시중은행들보다 고객수와 상품 라인업이 많지 않은 인터넷은행 입장에선 대환대출 플랫폼이 자사상품 홍보창구가 될 수 있어서다.
특히, 이달 22일 예대금리차 비교공시 시행 이후 이같은 목소리는 더 커지는 모양새다. 인터넷은행들은 예대금리차 수치가 높게 나와 이자장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는데, 정부 정책에 맞춰 중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한 결과라는 것을 아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통계 함정'이 불가피한 예대금리차 공시보다 대환대출 플랫폼을 통해 각 금융회사의 대출상품 경쟁력을 비교해보자는 게 인터넷은행의 주장이다.
한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전체 은행을 두고 일률적인 기준으로 줄세우기를 하면 당연히 후발주자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중저신용자 대출의 경우 인터넷은행의 경쟁력이 크기도 하고, 대환대출 플랫폼을 통하면 무한경쟁 체제가 되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에게 유리한 시스템이 구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플랫폼 경쟁력을 둘러싼 업권 간 경쟁에 이어 같은 은행권 안에서도 밥그릇 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지면서 결국 대환대출 플랫폼이 재추진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 그 과정에서 정작 서비스를 이용하는 금융소비자들의 편익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대환대출 플랫폼이 있으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확대되는 측면이 있고 금융사들끼리 금리경쟁도 가능해질 수 있지만 금융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사실상 (추진이) 잘 안 될 가능성이 있다"며 "플랫폼을 만들되, 대환에 따른 중도상환수수료율을 올리는 등 금융사들의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