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경기 둔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인플레이션 억제에 필사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연내 2%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고 이를 위한 잇단 자이언트스텝에도 불구하고 아직 만족할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연준은 파월 의장에 이어 레이얼 브레이너드 부의장도 인플레이션을 목표치로 끌어내리기 위해 경제를 둔화시킬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통화긴축 지지 발언을 했다. 물론 긴축에 따른 시장 위험을 간과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드러냈지만 그간의 금리인상이 인플레이션 억제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은 인상 기조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지금 세계 각국은 경기침체 방어냐 인플레이션 억제냐는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런 세계를 향해 미국이 방향을 제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미국의 정책에 각국이 같은 스텝을 밟고 있지는 않다. 대부분의 국가가 금리인상에 뒤따라 가고 있지만 정부 부채가 많은 일본은 오히려 금리인하로 기울고 있으며 기업 부채가 많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미국에 의해 경제봉쇄에 준하는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은 저금리 기업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다소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금리 인상을 따라가기는 하되 소극적으로 뒤따르며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경제구조 상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을 것이지만 경기침체로 인한 고통을 회피함으로써 오히려 약한 고통을 더 오랜 기간 지속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런 상황은 중산층 이하 계층의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며 양극화를 그 어떤 나라보다 심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각국이 처한 경제적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 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요동치는 환율시장이 언제까지 이런 동요를 견뎌낼 수 있는지에 따라 각국의 미래가 엇갈릴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미국은 높은 주거비용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라는 약점을 갖고 있다.
한국의 아킬레스건인 가계부채 부담을 줄일 기회는 있었다. IMF 등 세계 금융기구들이 한국 정부에 계속 경고를 보낼 때조차 국내 정치적 반대세력에 의해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현 정부는 과거 스스로가 행했던 그런 정치적 반대의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발생하는 부채 부담을 가계 대신 정부에서 지는 선택을 한데 비해 한국은 정부 지원을 억제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가계부채를 더 증가시키는 역선택을 한 셈이 됐다.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풀었던 미국은 비록 올 한해 경기를 희생시키더라도 과감한 금리인상으로 풀린 자금을 회수할 여력이 있지만 한국은 그런 선택의 폭을 스스로 좁힌 결과를 초래했다. 그렇다고 경기둔화를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미국은 소비자 중심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중산층의 붕괴를 막기 위한 방향을 선택한 반면 현재 한국 정부는 기업 및 자산가 위주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는 쪽을 지향하고 있다. 세계가 가는 방향과는 반대로 역주행을 선택한 현 한국 정부 정책을 향한 세계 투자자들의 시선에는 의혹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간의 역사에서 호경기와 불경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경기 사이클은 중산층의 자산을 고액자본에 흡수시키는 양극화 심화의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그리고 세계는 점차 그 위험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부는 그런 흐름을 거슬러 가려 하고 있다. 지표상으로 그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과거의 관념적 이론을 추종하며 법인세를 인하하고 노동유연제를 선택하겠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미국 금리인상에 어정쩡하게 뒤쫓아 감으로써 대외적으로는 한·미 금리 역전현상을 발생시켜 외환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국내적으로는 버블이 커진 부동산 시장의 붕괴 위험에 금융 부실채권이 증가할 것이라는 위기감도 일어나고 있다.
불가피한 고통은 피해갈 수 없겠지만 그 고통이 사회적 약자와 중산층에게 오롯이 집중되면 결국 불평등이 심화되고 지나치게 기운 추는 쓸모를 다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