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괄매각 추진···대우조선 정상화에도 긍정적
결합심사·노조소통 숙제···"신뢰바탕 최선 다할 것"
[서울파이낸스 주진희 기자] 연초 현대중공업그룹과의 인수합병(M&A)이 무산되면서 갈 곳을 잃었던 '미운오리새끼' 대우조선해양이 돌고 돌아 한화 품에 안긴다.
오랜 기간 불황을 겪은 대우조선해양 입장에서 비(非) 조선기업의 인수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던 점을 고려했을 때, 한화 인수는 최선의 대안이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시장에서는 방산과 항공우주 기술을 보유한 한화가 액화천연가스(LNG) 등 독보적 친환경 선박 기술을 대거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을 품으면서 육해공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방위산업(방산) 기업이 되기 위한 최종 퍼즐이 맞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지막 관문'인 전 세계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에 이어 대우조선해양 노조와의 원만한 갈등 해결이 중대 과제로 남겨져 있는 상황에서 21년만의 매각이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쏠린다.
◇돌고 돌아 다시 한화···"한국형 록히드마틴 될 것"
27일 재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대우조선 인수 추진을 위해 대우조선해양과 2조원의 유상증자 방안을 포함한 조건부 투자합의서(MOU)를 체결했다. 이번 투자합의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한화그룹은 49.3%의 대우조선해양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방산과 항공우주기술 등 그룹의 핵심역량을 대우조선의 조선, 해양 능력과 결합해 '한국형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 Corporation)'이 되겠다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꿈이 13년만에 이뤄진 셈이다.
앞서 한화는 지난 2008년 6조 이상의 베팅에도 불구하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한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은 "아무리 잘 만든 배도 프로펠러가 부실하면 거친 파도를 헤쳐나갈 수 없다. 한화야 말로 대우조선해양의 강력한 프로펠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며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한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기도 했다.
한 번의 고배를 마셨음에도 인수에 다시 뛰어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업계는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의 적격한 인수자로 꼽힌 배경으로, 방산 분야 집중 전략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한화는 올해 들어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그룹의 뿌리인 방산을 미래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에 따라 대대적 사업 구조 전면 재편과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며 이를 추진해오고 있었다.
이번 인수로 조선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넘어 그룹 주력인 방산 분야에서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가속이 붙을 것으로 점쳐진다. 전 세계에서 지정학적 위기로 한국 무기체계에 대한 주요국의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통합 방산 생산능력과 글로벌 수출 네트워크를 확대하겠다는 게 한화의 목표다.
한화 측은 "이번 인수는 그룹의 사업적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뿐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투자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정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상에서 항공우주까지···'육해공 방산 경쟁력' 제격
한화는 오는 11월 한화디펜스와 합병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대우조선 인수를 통해 지상에서부터 항공우주에 이르는 '육해공 종합방산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에 대한 이슈로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이 빨라지는 시점에서 대우조선의 조선, 해양 기술을 통해 '글로벌 그린에너지 메이저'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화는 이미 LNG를 미국에서 수입해 통영에코파워가 발전하는 사업 구조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대우조선의 LNG 해상 생산기술(FLNG)과 운반, 연안에서 재기화 설비(FSRU)까지 더해지면 '생산-운송-발전'으로 이어지는 그룹사의 친환경 에너지 밸류체인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한화 측은 "그룹의 핵심역량을 대우조선의 설계∙생산 능력과 결합해 조기 흑자전환은 물론 방산과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서 '글로벌 메이저'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통째매각, 빅3 입지 공고히···경영도 안정화
대우조선 민영화 방안이 분리매각이 아닌 '통째 매각'으로 이뤄짐에 따라 대우조선해양도 조선 빅3 '3강 구도'에서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조선 사업부는 특수선(군함·잠수함)과 상선 부문으로 나뉜다. 이에 한때 일괄 매각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방산에 속하는 특수선 부문은 국내 기업이 인수하고, 상선 부문은 해외에 매각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그러나 이 경우 대우조선 매출에서 특수선 분야에 차지하는 비중이 10∼15%인 점을 고려하면 분리매각은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반발이 제기됐다. 또 상선 분야가 해외에 매각되면 한국이 압도적으로 앞선 LNG 운반선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결론적으로 대우조선이 한화로 일괄 매각됨에 따라 독보적인 기술을 보존 및 강화에 이어 민간기업 2곳(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과 정부 지원을 받는 1곳이 겨뤄왔던 불공정했던 빅3간 경쟁 구도 또한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아울러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도 대규모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실적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현대중공업 그룹과의 결합이 불발된 이후 미정이었던 자본확충 방법론이 확정돼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며 "조선 시장 회복세도 약하지 않아 구조조정에 좋은 마침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우조선, 21년만에 고진감래?···결합심사·노사관계 과제
이번 인수합병(M&A) 따라 오랜 불황을 겪었던 대우조선해양이 고진감래(苦盡甘來)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는 반면,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먼저 합병의 결정적 관문인 전 세계 경쟁당국으로부터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연초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그룹의 M&A는 시장의 경쟁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불발된 바 있다. 3년간 준비했던 합병작업이 무산됐기에 이 같은 사태가 또 다시 벌어질까 우려도 없지 않아 있다.
다만, 한화는 비(非)조선기업이기에 각국의 기업결합 심사는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하며 매각작업을 진행하는 것 또한 중대한 숙제로 꼽힌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다행인 건 과거 현대중공업그룹의 인수 경우 동종업계였기에 구조조정 우려로 노조 측 반대의 목소리가 컸지만 이에 반해 이번 매각은 큰 잡음없이 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노조 또한 M&A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면서도 "속도전보다는 검증이 우선"이라며 "매각 과정에서의 소통이 필수적으로 요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2조원에 인수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우조선은 세계 조선 시장에서 한국 조선산업의 지위를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로, 정치인과 관료가 졸속으로 팔아 버려서는 안 되는 기업"이라며 정부와 산은의 후속 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매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조와의 소통을 이어가야 한다"며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계기로 하청 노동자를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가압류도 모두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화 측은 다양한 분야 속 M&A의 성공 경험을 강조하며 "노조와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신뢰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노사 관계도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