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전 세계가 경제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이 경제위기가 끝난 이후 각국의 성적표가 동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각국 정부의 대응에 따라 국가 순위에 큰 변동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몇 달 전 원·달러 환율이 치솟을 때는 한국 내에서 많은 이들이 과거의 외환위기 악몽을 먼저 떠올렸고 또 일부는 2008년 전 세계를 흔들었던 미국발 금융위기의 재연을 염려했다. 외환위기 우려는 정부의 반응부터가 당시와 비슷했기에 더 크게 다가왔다.
그 걱정은 환율이 다소 진정되면서 슬그머니 가라앉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의 금리인상 추이가 아직도 언제까지 얼마나 더 지속될지를 확신할 수 없기에 여전히 불안은 남아있다.
그러나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시작된 미국의 대폭적이고도 지속적인 금리인상은 최근 들어 미국의 근원물가지수 상승세가 어느 정도 안정세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내년도 경기침체 우려와 맞물려 어느 정도의 속도 조절이 거론되고 있어서 다소의 희망적 전망들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정부는 11월 중 물가상승률이 다소 꺾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외부 요인에 의한 가격변동 폭이 큰 식량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지수로 보면 상승률은 꺾이지 않았다. 한국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이던 미국이나 유럽이 모두 안정세로 변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를 보인다.
이런 물가의 안정화 추세는 다시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외교력 경쟁을 촉발시키며 새로운 목소리들을 키워내고 있다. 유럽은 물가가 안정되어가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일방적이고도 패권적 경제지배에 반대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 최대의 생산기지인 동시에 소비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과의 교역에 제동을 걸고 있는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던 세계가 양극체제로 회귀하려는 미국적 전략에 반하는 주장들을 펼치고 있다. 유럽은 특히 양극체제에 대항하며 다극체제 시대를 선언하고 미국과 중국에 양손을 내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에서도 그렇고 중국봉쇄전략을 통해서도 그렇고 미국은 비적성국들을 모두 ‘내 뒤를 따르라’며 양 진영으로 갈라치기 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확실히 챙겨오며 동참국가들에게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감수하도록 요구해온 데 대해 반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독일은 미국의 일방적 요구로 인해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더욱더 다극화 시대를 향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영향력 있는 모든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애쓰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난하면서도 경제관계는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데 반해 한국은 지난 정부에서 간신히 유지하던 균형외교를 포기하는 대신 최대 수출국이었던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적대적 전략의 최일선을 자임하고 나서는 시대역행을 감행했다. 그럼으로써 국가안보상의 위험성을 높인 것은 물론 32년간 유지되던 대중국 무역흑자를 단숨에 무역적자로 전환시켜버렸고 미래의 중요한 교역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러시아와도 적대적 위치로 돌아섰다.
한국 수출의 4분의 1 가량을 담당하는 대중국 무역에서의 적자는 내년 중 한국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뇌관이 되고 있다. 또한 러시아와는 기술적으로나 자원 확보 측면에서나 나아가 새로운 교통로 확장 측면에서나 여러모로 매우 긴요한 관계를 맺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지금 한국은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콜옵션 사건 등으로 국제적 신용이 추락했고 국내에서도 정부와 한국은행이 막대한 자금을 투하하고 있음에도 신용위기는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그 여파는 내년 상반기 흑자도산 도미노를 부를 위험성을 높이고 신생 테크기업들의 좌절과 도태를 촉발시켜 미래로 건널 다리를 무너뜨릴 염려가 크다.
이런 내우에 대외관계에서는 적을 늘리며 스스로의 다리를 묶는 외환을 동시에 촉발하는 신기를 선보이는 정부가 과연 2023년 세계적 경제위기에서 어떻게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지 근심하지 않을 수 없다. 돈을 푸는 시점도 제대로 잡지 못해 암만 돈을 풀어도 그 돈은 대기업 금고에 잠겨만 있는 그 미숙함에 나라의 미래를 기대야 하는 국민들의 속이 타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