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선정 요건도 강화, 정비사업 걸림돌···"제도 개선 취지 무색"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지난달부터 시행된 서울시 도시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조기화로 일감 확보에 기대감이 높았던 건설사들이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제도가 시행된 지 두 달째 관련 세부 지침도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특히 시공사 선정 요건을 강화하면서 정비사업을 촉진하겠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2월 시공사 선정 조기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지 반 년이 넘도록 관련 세부 지침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앞서 시는 지난 2월 시내 모든 정비사업구역에서 시공사 선정 시기를 종전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선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 3월 도시·주거환경 정비 조례 개정안을 공포하고 지난 7월1일부터 개정안이 본격 시행됐다.
조합설립인가 이후 사업시행인가를 받기까지 1~2년가량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시공사 선정 시점이 앞당겨지면서 업계에서는 서울시내 정비사업이 활성화할 거란 기대감이 고조돼 왔다. 조례 개정에 따라 시공사 선정이 가능한 재건축, 재개발 사업장이 기존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47곳에서 조합설립인가를 마친 116곳으로 확대되면서다.
하반기 한남뉴타운 내 알짜 입지로 꼽히는 한남4·5구역, 노량진뉴타운 핵심 입지인 노량진1구역 등 굵직한 정비사업 물량도 시공사 선정을 대기 중인 만큼 건설사들의 물밑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조례가 시행된 지 두 달 가까이 지나도록 세부기준이 없어 시장에는 혼선만 빚어지고 있다. 조합은 시공사 선정 시 서울시장이 별도로 정해 고시한 세부기준에 따라 설계도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구체적인 준비 서류와 재투표 방법 등 세부 지침이 없어 사업 추진에 발이 묶였다.
서울시는 세부기준 마련을 위한 마무리 검토 단계에 있으며 관련 내용을 확정해 조만간 발표한다는 계획이지만 당장 세부기준이 발표되더라도 수개월간의 행정예고 등을 거쳐야 한다. 조합과 시공사는 신설된 기준에 맞춰 사업 방향과 일정을 새로 짜야하기 때문에 사실상 시공사 선정 조기화 추진이라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또 개정안에는 시공사 선정 요건으로 '조합원 과반수 동의' 요건이 포함되면서 시공권을 따내야 하는 건설사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 기존에는 조합원 과반이 참석한 총회에서 다득표한 건설사가 시공사로 선정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과반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하도록 요건이 강화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1대 1 경쟁 구도에서도 한 건설사가 전체 조합원의 과반을 득표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 만큼 만큼 해당 요건이 시공사 선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실제 지난해 11월 시공사를 선정한 한남2구역 재개발의 경우 2파전 경쟁구도 속에서 조합원의 45.2%를 득표한 대우건설이 시공권을 확보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세부 지침이 확정돼야 사업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할텐데 조합·시공사 모두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서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도저도 아니고, '과반 동의' 요건이 생기면서 경쟁입찰을 통한 시공사 선정이 더 어려워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세부 지침과 관련, 서울시에 문의하고 내부적으로도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하고 있지만 답이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시공사 선정 조기화를 통해 건축심의 인허가 과정에서 시공사의 전문성, 신용도 기여로 사업비 조달에 유리할 수 있고 설계 변경 등 불필요한 매몰 비용과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 조례의 세부 기준과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정안이 적용되는 사업지의 경우 마냥 기다려야 하는 처지고, 강화된 요건 등으로 유찰 우려도 커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