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비용 증가로 금융소비자 부담 늘릴 수도" 지적 제기
법안 취지 공감···"일부 조항 삭제, 채무조정 제도 보완 필요"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연체 채무자의 과도한 연체·추심 부담을 완화하고, 재기를 돕는 내용의 개인채무자보호법이 관련 규제비용을 증가시켜 금융소비자 전체의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규제 강화는 또 제2금융권, 제3금융권의 영업활동을 위축시켜 취약차주를 제도권에서 밀어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일부 조항들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함께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한 법률 제정 추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은행법학회가 1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개인채무자보호법(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의 쟁점과 과제 정책세미나'에서 김대규 서울디지털대학교 법무행정학과 교수는 이같이 말했다.
개인채무자보호법은 취약차주를 보호하기 위해 금융회사 자체 채무조정 활성화, 연체이자 제한, 추심부담 경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2월 이런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김 교수는 "개인금융채무자보호법안은 기존의 금융소비자보호법, 대부업법, 이자제한법, 공정채권추심법,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서민진흥법과 겹치는 규정이 상당하다"며 "개인채무자보호법은 규제비용을 증가시키는데, 현행 최고금리는 규제비용 증가분을 영업에 반영할 수 없도록 제약하고 있어 소비자 전체의 부담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저축은행, 카드사 등이 최고금리에 육박하는 대출상품을 내놓는 고금리 시기에 개인채무자보호법으로 규제를 강화하면 2·3금융권 영업 활동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취약차주를 제도권 밖으로 몰아내는 '규제의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조항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도 제기됐다. 먼저 세미나 주제 발표를 맡은 고동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안으로 채권추심회사의 재산권이 과도하게 침해될 수 있다고 봤다.
고 교수는 "채권 양도 전 장래 발생 이자채권의 면제 조항(법안 제9조)과 관련해 장래 발생할 이자 채권 면제 여부는 채권 매매 당사자 사이에 합의할 사항"이라며 "법이 강제해서 이자를 받을 수 없게 하면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에 영향을 미쳐 양도채권 가격이 하락하고, 채권금융회사등의 재산권 행사에 대한 침해 소지가 있다"고 했다.
법안이 새로이 도입하고 있는 채무조정 제도에 대해선 "채무조정 개시 시점의 명확화, 채무조정 요청 제한 사유의 확대, 허위 서류 제출 시 채무조정 거절 사유 추가, 채무조정안 제시에 대한 개인금융채무자의 수락 기간 규정 등 채무조정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했으나, 개인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비호 또는 조장하거나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훼손하는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그만큼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어느 때보다 개인과 가계의 경제적 곤경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개인 채무자 보호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다"면서도 "법안은 개인의 불평등한 교섭력이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추진돼야 하고,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거나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훼손하는 제도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악성 채무에 시달리는 빈곤층을 보호하는 취지라면 핀포인트식으로 대상자를 선별해 정부 재원으로 진행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며 "채권금융회사 등의 귀책 사유를 묻지 않고 손실로 해결되도록 책임을 전가하는 식의 접근 방향은 관치 내지 포퓰리즘식 처방이 될 수 있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채권금융회사등의 자체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채권금융회사등의 채무조정 수단의 다양화와 다중채무자의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연계 방안 등이 추가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