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인민은행 모두 금리 동결···인하시점 후퇴
[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금리인하 기대감에 일제히 제동이 걸렸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전망이 미뤄지면서 강달러가 재개된 것이다. 이로 인해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 전망도 늦춰졌으며, 금리 인하가 유력했던 중국 역시 금리를 동결하는 등 연초의 기대감이 모두 후퇴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지난 25일 선물시장에 반영된 3월 조기인하 가능성이 40.4%까지 떨어졌다. 지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90%를 웃돌던 3월 인하 기대감이, 한달새 반토막 난 셈이다.
미 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가 축소된 배경은 미 경제지표의 호조다. 이달 초 발표된 12월 비농업 고용(21만6000명)이 예상치(17만명)를 크게 웃돌았으며, 1월 합성 구매관리자지수(PMI) 예비치(52.3)가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성장세가 확대된 상태다. 연준 입장에선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경기가 호조를 보인 만큼, 조기인하 필요성이 낮아졌단 진단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선행지수가 바닥을 확인하고 점차 돌아섰으며, 특히 신용위기 가능성이 이전보다 낮아졌다"며 "현재까지만 보면 미 경제는 둔화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경기침체보다 연착륙의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시장은 여전히 2분기 중 금리 인하를 시작해, 5회 이상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는 연준의 시각과 차이가 커 보인다"며 "미 경기가 골든패스(Golden Pass)에 가까워지고 있다면, 연준의 통화정책은 작년 12월 점도표를 통해 제시한 것(연내 3회 인하) 이상으로 완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작년 말 100.38선까지 하락했던 달러 인덱스는 현재 103.5선까지 3% 가량 반등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채 2년물 금리도 지난 13일 4.148%에서, 전일 4.387%선까지 올라왔다.
특히 서방과 예맨 후티 반군 간 홍해 지역에서의 무력 충돌로 중동리스트가 고조, 전통적 안전자산인 미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확대됐다. 이에 연말 큰 폭으로 조정된 달러 가치에 대한 되돌림이 나타났다는 평가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해외 투자은행(IB)들의 달러 예상경로는 중기적으로 우하향하는 형태며, 1분기 말 전망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다만 연준의 조기 금리인하 전망이 후퇴하면서, 미 달러화는 당분간 미국 성장·물가 향방과 연준의 커뮤니케이션에 따라 등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준의 조기인하 기대감이 후퇴하면서, 주요국의 금리인하 기대감에도 제동이 걸렸다. 지난 25일(현지시간) ECB는 통화정책이사회를 통해 기준금리를 연 4.5%로 동결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이후 세차례 연속 동결이다.
회의 결과에 대해 시장에선 비둘기파적(통화완화 선호)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가 물가상승률에 대해 "12월 인플레이션 반등이 예상보다 약했다. 연말까지 물가 압력이 더욱 완화될 것"이라고 평가한 것이 핵심 근거다. 이에 ECB가 4월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도 확산됐다.
다만 시장 관계자들은 금리인하 시점을 6월로 보고 있다. 성명문에서 "충분히 오랜 기간 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유지된 데다,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라가르드 총재가 직접 "시기상조라는 데 이사회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로존 구매관리자지수(PMI)가 10월 이후 지속 반등하는 등 경기개선세가 나타났으며, 4월 회의 이전까지 물가상승률이 2% 초반대 수렴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4월 인하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특히 ECB가 주목하고 있는 1분기 고용·임금데이터가 발표되는 시점이 4월 회의 이후인 만큼, 이를 확인 후 6월 회의에서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후퇴한 것은 ECB뿐만이 아니다. 지난 22일 중국인민은행은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5개월째 동결했다.
앞서 시장에선 이날 인민은행이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중국 물가상승률이 세달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실업률이 상승하고 있는데다, 소매판매가 예상치를 하회하는 등 경기침체 우려가 높아지면서 금리 인하가 유력시되고 있었다.
동결 배경의 원인은 무너진 위안화 가치로 풀이된다. 현재 달러당 위안화 가치가 7위안을 돌파하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절하됐기 때문이다.
중국 경기에 대한 정부와 시장간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부진한 경기지표가 가계와 민간 부문의 성장 둔화를 가리키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관점에선 수출 경쟁력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안화 약세를 확대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진단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중국 정부는 현재 2조위안(약 370조원) 규모의 홍콩증시 부양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앙은행에 의무 예치해야 하는 자금 비율인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나 인하하는 등 유동성 풀기에는 적극 나서고 있다.
최설화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시장은 민간소비 부진, 높은 청년 실업률, 부동산 경기 침체 등에 주목하지만, 정책당국은 부분 성장 둔화를 감내하더라도 경제 구조 전환 같은 체질 개선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