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카르텔' 형성, 공정 거래 저해···공기 지연‧비용 상승 등 야기"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건설 경기 악화 속에 관급자재 사용에 대한 문제가 부각된 가운데 일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민간 사업장에서도 지역 내 특정 레미콘 업체 사용을 강요하는 등 '지역 카르텔'을 형성하는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업체 간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역차별은 물론, 건설 현장 레미콘 수급 불안과 불필요한 비용 상승을 야기한다는 의견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일부 지자체들이 관급 공사가 아닌 민간 공사 현장에서도 지역 업체 사용을 과도하게 권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레미콘 업체가 내부 조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경기도 파주시 △경기도 평택시 △경기도 이천시 △충청남도 아산시 △충청남도 천안시 △강원도 춘천시 △부산광역시 북구 등이 건설사와 건설 현장에 협조 공문 발송은 물론, 유선 연락, 현장 방문 및 점검 확대, 특정 업체 지정 등 필요 이상의 권고 행위를 하고 있다.
이들이 확인한 실제 사례를 보면 ○○시는 공사 현장 인근 대형 레미콘 업체들의 공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1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 공장을 둔 향토기업 2곳을 특정해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지역 공무원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현장관리팀장을 만난 데 이어 현장소장까지 면담하는 등 현장을 압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는 주요 건설사 8곳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건축과 담당 공무원이 매달 초 현장을 방문해 관내 업체 사용 수량을 확인했으며, ☆☆시는 건설사를 상대로 권내 업체 우선 사용을 권고해 100% 지역 업체를 발주토록 하거나 추가 물량 발주 요청 건에 대해 권내 업체를 우선 협상하도록 했다. 거리상 공사 현장과 가깝지만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일부 업체들을 배제하도록 권고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와 관련, A 건설사 관계자는 "권고라고 하지만 건설사 입장에서는, 특히 지역 내 기반을 두거나 공공공사를 많이 하는 중소 건설사의 경우 추가 사업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지자체에 맞출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긴 하다"면서 "가격이나 수급 등이 문제가 될 수 있을 텐데 최대한 조율해서 현장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말했다.
B 건설사 관계자도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긴 어렵지만 자재업체뿐 아니라 협력사도 가급적 지역 업체를 써달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레미콘 업체들은 지자체가 건설 현장과 레미콘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행정구역을 기준 삼아 공정 경쟁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레미콘은 반제품으로 생산 후 90분 내 운반과 타설이 완료돼야 하는 특성상 거리와 시간이 중요한데 이 같은 특성과 시장 생태계를 이해하지 않고 행정구역으로 단순히 나눠 업체를 차별하고 있다"며 "지자체가 필요 이상의 강요 시 혜택을 받은 일부 업체들은 해당 물량을 기 확보 가능한 '잡아놓은 물고기'로 인식, 기업의 신규 영업 물량을 먼저 출하하는 등 권역 내 수급 불균형을 초래하는 일도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관급 자재 사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공정 거래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선 정부의 움직임과도 배치되는 행태라는 의견이다. 실제 건설경기 악화 및 대내외 이슈 등으로 건설공사가 줄고 건설자재 수급이 불안정해지며 주택 공급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공급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조달청은 공공공사 현장에서 발주 지연 및 비용 증가를 야기하는 관급 자재 사용의 폐해를 지적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관급 건설 현장 레미콘 다수공급자계약 규정'을 변경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21년부터 올해까지 연구용역을 통해 지자체의 △진입 제한 △사업자 차별 △사업 활동 제한 △기타(소비자 이익 저해, 가격 제한 등) 등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 한 레미콘 업체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 업체를 우선 사용토록 권고할 수는 있지만 이 같은 논리로 과도하게 경쟁을 제한하면서 지역카르텔을 형성하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문제"라면서 "이는 발전적인 시장구조 창출하고 유지하는 공정 경쟁을 방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건설 현장의 공기 지연 및 불필요한 비용 상승을 야기해 공사 원가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