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위해 '펜스' 설치···과거 정비승인 당시엔 '개방형 아파트'로 허가
공공보행통로지만 사유재산이고 법에 명확한 근거 없어 통제 불가해
카드 대신 안면인식 출입 방식으로 변경하는 곳도···"외부인 원천 차단"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외부인 '출입 통제'는 아파트 단지 입주민 사이에서 민감한 이슈로 작용한다. 외부인으로 인한 단지 시설물 훼손 등이 아파트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이에 최근 일부 지역의 아파트 단지에선 외부인 출입 방지를 위한 펜스를 설치하고, 입주민 카드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안면인식으로 입출입 방식을 바꾸자는 대안도 논의되는 모습이다.
최근 기자가 방문한 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 근처의 대단지 아파트에는 정면부터 후문까지 연결되는 대형 펜스가 설치된 상태다. 차량 통제와 더불어 도보 통행자도 입주민이 아니면 진입이 불가능하다.
놀라웠던 건 이 아파트 뿐만 아니라 이곳 인근의 다른 아파트 3곳도 비밀번호 방식의 출입 통제 펜스가 설치돼 외부인 단지 출입을 막고 있었다. 이 지역 한 아파트 입구에서 경비 일을 하는 A씨는 "외부인들이 아파트 단지의 시설들을 무단으로 이용하고, 이에 따라 보안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담장(펜스)를 두른 것으로 안다"며 "설치 후에 확실히 단지가 조용해진 느낌"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외부인 아파트 출입통제 이슈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몇 년 전에도 1320가구 규모의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 아파트 단지가 1.5m 높이의 철제 펜스를 아파트 전 구간에 걸쳐 불법 설치해 논란이 됐다. 이 펜스는 2020년 5월 건축물대장 상 위반건축물로 등재됐으나, 설치한 조합장은 법 위반으로 고발돼 벌금 100만원을 부과 받았을 뿐이다.
디에이치 아너힐즈의 경우 주변에 대모산이 있어 등산객들이 아파트 단지에서 음식을 시켜 먹고 쓰레기는 남기는 등 입주민 주거환경이 불안해졌기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알려진다. 개포래미안포레스트, 개포래미안블레스티지 등 고급 아파트에서도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한 불법 펜스 설치사례가 있었다.
문제는 해당 아파트들이 과거 정비 계획 설립 당시엔 '개방형 아파트'로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개방형 아파트는 울타리나 벽 따위로 내부와 외부를 나누지 않아 사방으로 열려 있는 아파트를 뜻한다. 주변 주민들의 보행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대부분의 재건축 사업지들이 허가를 받는 방식이다.
보통 지자체들은 지구단위계획에 '공공보행통로'를 포함해야 정비사업을 승인하고 있는데, 이는 아파트 대지안에 일반인이 지날 수 있도록 24시간 개방된 통로다.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시민들이 5분이면 가던 길을 10분씩 돌아가는 불편함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한 재건축 전문 변호사는 "공공보행통로로 쓰이는 땅이지만 아파트 주민의 사유재산인데다가, 현재 공동주택관리법상 이와 관련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통제가 어려운 것 같다"며 "심의 과정에서 이를 약속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프라이버시'를 근거로 약속을 이행 안한다고 해도 주었던 인센티브를 회수할 순 없는 노릇"이라고 짚었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 펜스 설치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현재 신축 아파트에서 단지 펜스 설치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입주자 등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지자체로부터 행위허가를 받으면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에 따른 지역 주민의 불편함은 일부 있을 수 있다. 한 사례로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와 마포더클래시는 지도상 맞붙어 있는데, 이 2개 단지 바로 옆에는 한서초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쪽에 중문이 있다. 그러나 마포더클래시 단지에서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쪽으로 갈 수 있는 통로가 막혀있어 마포더클래시 거주 초등학생은 100걸음 앞 한서초를 두고서도 단지를 벗어난 외부 도로를 따라 먼 길로 통학하고 있다.
펜스 외에도 단지 내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한 조치는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최근 강남구 소재 한 아파트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입주민들에게 인식표를 판매하고 산책 시 이를 부착하도록 해 외부인이 반려동물과 단지 내에서 산책하는 것을 원천 차단했다. 인식표를 부착하지 않은 채로 산책을 하다 적발된 반려동물과 주인은 단지 밖으로 즉시 이동해야 한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선 외부인이 입주민의 카드를 빌려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카드 대신 안면 인식으로 출입 통제를 하자는 대안이 현재 논의되고 있다.
임희지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서울시 슈퍼블록 주택지 유형별 도시근린 재생모델 개발 방안' 발표에서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단지 사례를 들며 "목동신시가지 7단지만 규모가 약 23만㎡에 이르고, 이와 함께 지어진 신시가지 단지만 14개다"라며 "개별 단지마다 출입 통제를 한다면 인근 단지 거주자의 통행이 매우 불편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시설을 외부에 개방하는 사례들도 여전히 있긴 하다.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는 이번달부터 한강 조망 '스카이 커뮤니티', 독서실, 도서관 등 일부 커뮤니티 시설을 외부인에게도 개방한다. 2017년 특별건축구역 지정 때 인센티브를 적용받는 조건에 따라서다. 인근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도 정비 사업 승인 당시 인센티브를 받는 조건으로 피트니스센터, 수영장, 사우나, 골프연습장 등을 외부에 개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