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언제 철거 되나요?"···유령 아파트, 지자체와 주민들의 고민
[현장+] "언제 철거 되나요?"···유령 아파트, 지자체와 주민들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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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도중 시공·시행사 부도로 장기간 방치···전국에 290여곳·60%는 15년 이상
경관 해치고, 범죄 현장 전락···치우지 못한 유해 물질로 2차 피해 가능성도
민간 소유라 강제로 철거 어려워···철거 비용·보상 등 위한 예산도 마땅치 않아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 짓다 만 16층 규모 아파트 5개 동이 25년째 방치 돼 있다. (사진=박소다 기자)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 짓다 만 16층 규모 아파트 5개 동이 25년째 방치 돼 있다. (사진=박소다 기자)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짓다가 만 채로, 방치돼 있는 건물이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곳 현장들은 건설사 부도, 사업 주체 간 벌어진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멈춰 섰고 심한 곳은 20년 넘게 이런 모습으로 방치되고 있다. 공사 중단 건축물이지만 사유재산인데다가, 건축주·시공사 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지자체에서도 철거 등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28일 기자가 방문한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는 짓다 만 16층 규모 아파트 5개 동(930가구)과 찢긴 추락 방지망 등만 남아 있는 상태다. 도색되지 않아 콘크리트가 드러난 외관과 실내, 단지 주변으로 무성하게 자란 풀이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인근에서 만난 동네 주민 A씨는 "동네에 처음 오는 사람마다 저 이상한 건물은 뭐냐고 물어본다"라며 "미관상 보기 좋지 않고 나도 볼 때마다 기분이 섬찟하고 안 좋다"라고 말했다.

이곳은 1998년 착공을 시작했지만 시행사 초원주택이 부도나자 이후 대림산업, 유한주택에 이어 2002년 GM종합건설로 잇따라 시행사가 바뀌었다. 그 사이 몇 차례 경매가 이어졌고 2016년 감정가 299억5555만원의 17%인 53억원에 현재 소유주인 한 폐기물처리업체가 낙찰했다. 처음엔 이 업체도 아파트 개발을 시도했지만 공사는 재개되지 못했다. 아파트 진입로 부지만 다른 사람이 사들이면서 진입 도로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땅 소유자들 간 협의가 되지 않으면서 이 건물은 25년째 흉물로 남았다. 취재결과 철거 비용만 70억원에 달해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외에도 전국 곳곳에 짓다 만 이른바 '유령 아파트' 군락지는 많다. 충남 보령에는 지금부터 30년 전 지상 15층, 14개 동 규모를 목표로 공사하다 방치된 현장도 있다. 현재 건물과 토지 매입 비용은 148억원이며, 추산 철거비는 100억원 안팎이다. 용인 처인구 고림동에도 2000년 착공해 2003년 시공사 부도로 공사를 멈춘 10개 동 아파트(공정률 45%) 공사 현장이 방치돼 있다.

이렇게 공사가 중단된 건물은 전국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2022년 말 기준 전국의 '장기 방치 건축물'은 286곳이다. 169곳(60%)은 공사가 중단된 지 15년 지난 건물이었다. 강원도가 41곳으로 가장 많고 이어 △경기(34곳) △충남(33곳) △충북(27곳) 등이 뒤를 잇는다.

더욱이 문제는 건설 경기가 안 좋아 부실기업이 많아지면서 이 같은 공사 중단 현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건설산업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까지 전국에서 부도가 난 건설사는 16곳에 달한다. △2021년 12곳 △2022년 14곳 △2023년 21곳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들어 부도 발생 횟수가 급증하고 있다. 폐업한 종합 건설사도 올해 5월 196곳으로 지난해 동월 대비 35.17% 늘었다.

이러한 방치 건축물은 주변 경관을 해치고, 일탈 목적의 무단침입 사례를 만들기도 한다. 또 공사과정에서 미처 치우지 못한 각종 유해 물질도 건물내 곳곳에 남아 2차 피해를 낳기도 하지만 지자체는 손쓸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지난 2015년 시장이나 군수가 안전상 위험한 건물을 철거할 수 있도록 '장기 방치 건축물 정비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천시 관계자는 "붕괴 우려가 있는 경우 철거를 할 수 있다는 법인데, 그게 아니라면 민간에게 재산권이 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많이 없다"라며 "또 철거 비용이라던가 철거 시 보상 관련 부분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예산 내에서 힘든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과천시는 장기 방치 건축물인 갈현동 우정병원 부지를 정비해 174가구 규모 아파트로 만들었다. (사진=과천시)
과천시는 장기 방치 건축물인 갈현동 우정병원 부지를 정비해 174가구 규모 아파트로 만들었다. (사진=과천시)

정부 개입으로 해결된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경기 과천시 갈현동에 있는 과거 우정병원 부지는 1997년 공정률 60% 단계에서 시행사 부도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20년 넘게 방치됐었다. 그러다 2015년 장기방치정비법 제정 후 1호 사업 대상지가 되며 현재 174가구 규모 아파트로 변신했다.

안양역 앞에 24년간 방치됐던 쇼핑몰 공정률 67%의 '원스퀘어' 건물은 현재 임시 공영주차장(75면)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매를 거쳐 해당 건물을 인수한 건축주는 안양시와 협의해 2025년 자진 철거를 결정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장기방치건축물 3법' 등을 지난해 발의했다. 장기 방치 건축물의 유해성에 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간 실효성이 없었던 정비기금과 관련해서는 지자체가 실질적으로 기금 재원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조항 등이 담겼다. 해당 법안은 현재 우선순위에 밀려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송 의원은 "주민 안전과 지역경제를 위해선 흉물로 방치된 건축물을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며 "관련 제도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국가적 지원과 관심을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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