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중단 예고된 청담삼익재건축, 강남구 중재 회의 18차례 거쳐 합의 도출
"공공이 권하면 그게 강제성, 민간이 손해 감수"···사업 지체 막은 것은 긍정적
물가변동은 시공사 탓 아냐···조합·시공사·정부 함께 공사비 인상분 책임져야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최근 건설 현장에서 공사비 증액 문제를 놓고 조합과 건설사 간 갈등이 빈번해지면서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 공사비 검증을 의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와 관련 공공이 갈등 중재에 나서면서 협상 결과에 따라 건설사들의 반응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부동산원에서 공사비 검증이 진행되고 있거나 완료된 사업지는 올해 상반기 기준 20곳에 이른다. 이들 사업지는 조합과 건설사 간 공사비 증액을 두고 자체 협의되지 않아 전문성을 가진 공공기관에 적정 공사비 검증을 의뢰했다.
2019년 불과 3건에 그쳤던 공사비 검증 건수는 △2020년 13건 △2021년 22건 △2022년 32건 △2023년 30건으로 5년 새 10배 넘게 급증했다. 국토교통부 자료 기준 지난해부터 올해 착공한 주택 건설 현장이 2018~2022년 착공 건수보다 40% 이상 적은 것을 고려했을 때, 공사비 갈등이 최근 들어 크게 심화한 것을 알 수 있다.
갈등 현장 증가에 부동산원뿐 아니라 서울시도 최근 공사비 검증 제도를 시작했다. 시는 3월 '정비사업 공사계약 종합 관리방안'을 마련해 지난달 산하 SH공사에 공사비를 검증하도록 했다.
SH공사는 제일 먼저 성동구 행당7구역(재개발) 공사비 검증에 나섰다. 행당7구역은 시공사 대우건설이 제시한 공사비 증액분 526억원(설계변경 280억원, 물가변동 246억원)을 조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갈등이 이어져 왔다.
이에 SH공사가 나서 공사비 검증을 했고, 그 결과 요청액의 53%인 282억원 증액을 인정했다. 설계변경 280억원 중 108억원은 증액 사유가 아니라고 봤고, 물가변동 246억원은 공사도급 계약서상 '물가 변동 배제 특약'에 따라 검증에서 제외했다. 다만 자재비 등 이례적인 공사비 상승으로 타협액을 제안해 합의하도록 했다.
이와 관련 대우건설은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라는 반응이다. 회사 관계자는 "다만 일부 양보로 조합원들이 피해를 보지 않게 됐고, 사업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던 부분에선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SH공사는 신반포22차 재건축 사업지에 대해서도 공사비 검증을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서초구 잠원동의 신반포 22차 재건축 조합은 현대엔지니어링과 3.3㎡당 공사비를 569만원에서 두배가 넘는 1300만원으로 올리는 계약을 맺었다. SH공사는 다음달 중 공사비 검증을 완료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향후 SH공사의 공사비 검증 결과에 따라 다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지만 정해진 건 없다"며 "공사비 증액은 사업 계약 당사자인 조합과 합의점을 찾아 마무리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서울시는 정비사업이 지체되는 곳에 전문가를 파견해 갈등 중재에 나서는 '코디네이터'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최근 잠실진주아파트·은평구 대조1구역·강남구 청담삼익아파트 등 3곳에 행정·도시 정비 전문가인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갈등 상황을 끝맺었다.
잠실진주 재건축은 2002년부터 재건축을 시작해 2021년 착공에 들어서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단지다. 2021년 11월 첫 삽을 뜨자마자 유물이 대거 발굴되며 사업이 지연됐다. 공사가 멈춘 동안 공사비가 많이 올라 시공사인 삼성물산 등이 공사비 증액을 여러 차례 요청해 조합과 갈등을 빚었다. 그러다 최근 서울시 코디네이터의 중재를 거쳐 지난 16일 증액 폭을 조정한 합의안이 의결됐다.
청담삼익아파트 재건축(청담르엘)도 조합과 시공사 롯데건설 사이에 일반분양 지연, 공사기간 연기, 마감재 상향, 금융비용 등을 둘러싼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에 서울시랑 강남구청이 나섰다. 강남구는 태스크포스(TF)팀을 신설, △전문가 사전회의 △조합 이사진 포함 협의체 회의 △서울시 변호사 코디네이터 참여 회의 △양측 변호사 간 중재 회의 등 6~7월 중 18차례 회의를 열어 조합과 시공사의 최종 합의를 도출했다.
조합이 공사비 증액 원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롯데건설 측은 추가 공사비 청구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또 일반분양 지연에 따라 발생한 금융비용도 일정 부분 감내키로 했다. 이에 조합은 다음달 말 총회 의결을 거쳐 일반분양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
다만 일각에선 갈등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공사비 의뢰를 하고는 있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는 만큼 실효성이 떨어지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또 조합과 시공사가 자유롭게 협의할 문제를 두고서 정부가 미리 나서 회사의 경제활동에 제약을 건다는 시선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주택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공공기관이 자꾸 민간의 영역에서 조정에 나서려는 방식이 딱히 바람직하게 보이진 않는다"라며 "이러한 협상 결과에 대해 건설사들이 만족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설계변경과 달리 물가 변동은 시공사에 원인이 있는 게 아닌 만큼 공사비 상승이 있다면 조합과 시공사, 정부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라 짚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공공은 자신들이 주택을 짓는 수익 구조로 민간 건설사의 공사비를 판단한다"며 "현재의 공공은 수익구조에 대한 이해도 없이 건설사에게 일방적으로 양보를 주장하는 게 대다수다"라고 부연했다. 그는 "회사는 적절한 사유로 공사비를 산정한 것인데 공공이 아니라고 못 박아버리면 민간 회사는 그냥 손해를 감수하고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