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연말이면 다음해의 국정방향이 발표되지만 계엄령이 발표되며 어수선한 정국이 이어져서인지 그런 관례가 무너졌다. 기획재정부도 새해 들어서야 비로소 올해의 성장률 전망을 내놓았다.
전 세계 평균 예상 성장률이 3%선인데 비해 한국은 정치적 변수와 기업의 비전확보 실패로 인해 그보다 훨씬 낮은 성장률 전망치들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은행은 1.9%, 기재부는 1.8%를 전망했지만 국제경제기구들이나 기업경제연구소 등의 전망은 그보다 낮아 심지어 1.6%까지도 보이고 있다.
그마저도 지금의 계엄발표 이후 커지고 있는 불확실성이 빠르게 해소되지 못하면 전망치는 더 낮아질 수도 있다. 비록 계엄령 발표 직후 의회가 계엄군의 봉쇄를 뚫고 빠르게 계엄령 해제를 결의함으로써 해외의 불안한 시선이 한풀 꺾였지만 이후 친위쿠데타 세력의 의회를 향한 반발이 일어날 때마다 경기하듯 환율이 요동치고 대한민국의 국제신인도는 지속적으로 하향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직 계엄세력에 대한 시민적 저항에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다소 남아있지만 그나마 빠르게 계엄세력을 정치권에서 완전히 밀어내지 못하면 시장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한 채 한국시장을 빠르게 손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방어에 총력전을 펼치며 국민연금 기금을 갉아먹고 있지만 비상상황에서 임시 권한을 얻은 대통령 대행이 탄핵된 대통령 비호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정부의 방어선은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환율이 잘못하면 1500원 선도 뚫을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지만 그런 와중에도 수출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주력품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지난해 50%에서 올해는 20%로 꺾일 전망이고 철강은 트럼프 재집권 여파로 대미 수출에 큰 타격이 예상되며 그 밖의 주요 수출품 시장 전망도 대체로 어둡다.
미국발 강달러 상황에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맞물리며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고환율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미 쓸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을 총동원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기세를 꺾을 수단이 더는 남아있지 않다. 환 헷지를 명분으로 한도 750억 달러 한도로 환율이 튈 때마다 국민연금이 자동적으로 달러를 풀게 만들고 한국은행과 국민연금의 스왑을 통해 650억 달러를 더 풀 수 있게 길을 열며 1450원을 방어선으로 잡았지만 한덕수 전 대행이 윤정부 방어에 나서는 순간 하루만에 그 방어선이 무너지며 1486원을 가뿐히 도달했다.
한국은행의 RP매입 한도를 150조원으로 확대했고 이미 그 중 38조원을 집행했으며 시중은행의 선물환 한도를 자본금의 50%에서 75%까지 풀어준 결과가 지금의 환율상황이다. 그러니 불확실성이 빠르게 해소되지 않으면 더 이상 정부의 환율 마지노선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뜩이나 수출 전망도 어두운 국내 대기업들은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인해 회사채 발행에도 큰 비용부담을 더 할 전망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국내 채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가 떨어지며 국채와 회사채의 금리차, 즉 스프레드가 크게 벌어져 지난 12월에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재정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계획이 상반기 중에만 일반 국채 198조원, 외평채 20조원 규모로 잡혀있고 상반기 중 만기가 도래하는 공사채는 100조원, 대기업 회사채는 50조원에 달한다. 현재의 환율은 이미 80%의 기업이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 1450원을 넘어섰고 정부가 상정한 마지노선이 그 언저리인 1440~1470원으로 잡혀있어서 빠른 희망의 비전이 제시되지 않는 한 올해를 못버틸 기업들이 줄을 이을 수 있다.
지금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산업의 미래성장 전망이 불투명하고 반도체 경기가 후퇴하는 영향이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빠르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국제사회는 이유없는 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정부를 불신하고 있어서 하루라도 빨리 현 정부가 교체되어야 시장도 성장을 하든, 제자리 걸음을 하든 안정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이는 그간 환율변동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만 봐도 명확하다.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기재부 장관을 겸하고 있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정치적 불확실성의 조속한 제거에 나서지 않고 계엄주도세력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끌려 다닌다면 경제관료로 평생 자부심을 가졌을 자신의 경력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