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도덕성
기업과 도덕성
  • 홍승희
  • 승인 2005.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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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워크아웃 조기 졸업과 함께 새로운 주인찾기에 나서는 등 봄날을 맞은 듯한 하이닉스 반도체에 꽃샘추위가 닥쳤다는 소식이다.

미국 법원에서 가격 담합혐의를 인정, 1억8천5백만 달러라는 막대한 벌금을 내게 됐다는 것이다.

하이닉스 측도 담합 혐의 자체에 대해서는 별달리 부정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예상보다 너무 거액의 벌금이 선고된데 대해 상당히 부담스러워 한다는 전언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이 지난 99년 4월부터 2002년 6월까지 하이닉스가 다른 업체들과 함께 D램의 수출가격을 담합, 미국 업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제소한 IBM, 애플컴퓨터, 델 등의 손을 들어준 이번 판결에서의 벌금 규모는 유례가 없는 거액이라고 한다.

이로써 하이닉스와 같은 혐의로 함께 제소된 삼성전자 등 다른 대미 수출 반도체 업체들도 뒤이어 그 같은 거액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세계 최대 D램 생산 및 수출국인 한국에 가장 큰 타격을 주는 이번 미국 법원의 판결은 형평성에 다소 의문을 갖게 하는 개운찮은 결말로 얘기되고 있기도 하다.

같이 제소됐던 미국의 마이크로테크놀로지사에 대해서만은 미리 사실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면제, 미국 기업과 외국 기업에 대한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이 불공정 혐의를 받는데 대해 우리 국민들은 선고 내용의 사실 확인을 하기에 앞서 내심 그럴 수 있겠거니 쉽게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만큼 도덕성, 공정함 등의 항목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한국민들로부터도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런 국민들의 평가가 결코 실제보다 박한 것은 아니다.

대한항공은 719억원을 분식회계했다고 고백해 놀라움을 줬다. 놀라운 것은 그 액수가 아니라 스스로 사실을 고백했다는 점이다. 처음 보는 일이니 놀라운 것이 당연하다.

물론 아무런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고백한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원이 집단소송제 시행을 앞두고 자진 신고하는 경우에 과거의 분식회계는 2년 동안 집단소송 대상에서 제외하고 회계감리도 면제해 주겠다고 하자 묵혀뒀던 사실을 미리 털어버리기 위해 고백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다른 기업들의 유사한 고백이 줄을 이을 수도 있다.

앞으로 이같은 고백이 줄줄이 나옴으로써 도대체 우리 기업들의 분식회계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는 기회가 됐음을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것인지 가다 한번씩 이런 면죄부를 주는 또하나의 관행이 생긴 것이라고 사시(斜視)로 봐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런 경영상의 문제보다 국민들을 더 답답하고도 황당하게 만드는 문제는 단순 재화를 넘어서 기업, 나아가 기업집단의 경영권까지 넘겨주기 위한 편법 상속 행위들이다.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 세금 부담으로 인한 부의 삭감없이 고스란히 물려주기 위해 벌이는 여러 상속 과정들은 거의 법률의 그물망에도 잘 걸리지 않는 참으로 신묘한 능력을 자랑한다.

지난해에는 삼성그룹이 이건희 현 그룹회장의 젊은 아들인 재용씨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수순을 밟는 과정에서 에버랜드 주식을 갖고 과도하게 가격놀음을 해 지탄을 받았다. 그런데 올해는 현대자동차에서 같은 사례의 발생이 예고되고 있다.

재벌기업들에 대한 감시를 꾸준히 하고 있는 참여연대는 최근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함께 광고회사 설립을 추진한다며 이는 편법적인 재산 상속을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몽구 회장의 외동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 소유의 회사들은 이미 현대차 그룹 관련 사업을 독점하며 최근 3~4년 사이에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 참여연대의 의혹을 뒷 받침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어느 그룹에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지금 한국의 재벌들은 너나없이 글로벌 경영을 금과옥조로 내세우며 내부 노동자들에게든, 시민사회에게든 혹은 정부에 대해서든 세계화한 시각과 자세를 요구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세계 기준의 경영원칙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지금 한국 사회가 정치권에 매우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듯 세계는 기업들에게도 갈수록 높은 수준의 도덕적 요구를 해나갈 텐데 언제까지 홈그라운드에서의 관습적 부의 세습에만 목을 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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