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 코스닥 상장사 직원의 한숨
[기자수첩] 한 코스닥 상장사 직원의 한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한수연 기자] "하락장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드네요"

지수 하락을 기원하는 기업 오너라도 등장한 걸까. 아니다. 이것은 증시가 상승장을 탈 때마다 항의 전화와 갖은 협박, 욕설에 시달리는 한 코스닥 상장사 공시 담당자의 하소연이다.

최근 코스닥 지수 급등이 도화선이 됐다. 이 회사에 투자한 개미들의 언성이 높아진 것이다. 주가가 나 홀로 급락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코스닥 '급등분'만큼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예컨대 코스닥이 3% 상승 마감한 날, 이 회사 주가는 0.41% 오르는 데 그쳤다면 사내 전화벨 소리는 요란해진다는 것이다. '다 오르는 데 너네는 뭐했냐'는 항의다.

특히 급등장에서 주가가 조금이라도 하락하는 날에는 협박은 물론, 욕설까지 들어야 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주가가 올라도 "기껏 손절매 했는데 왜 계속 오르냐"는 식의 불평까지 들어야 한다는 하소연이다.  

그가 본업에만 오롯이 매진할 수 있는 날은 코스닥이 급락하는 날이라고 했다. 대다수가 손해보는 날이라면 투자자들도 주가에 왈가왈부하지 않아서다. "차라리 코스닥 하락이 더 반갑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였다.

물론 이같은 상황을 놓고 개인투자자들만을 탓하긴 어렵다. 주가란 기업의 재무상태와 성장성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되는 지표란 점에서, 예외는 있지만 급락의 대부분은 해당 기업의 '잘못'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의 씁쓸함은 지우기 어렵다. 담당자의 하소연이 마치 국내 코스닥시장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다.

국내 코스닥기업의 경우 실적 악화, 도덕적 해이 같은 뚜렷한 악재 없이 주가가 하락할 경우 사실상 손 쓸 방법이 없다. 특히 최근처럼 주식시장이 부진할 경우에는 자금조달에 더욱 애를 먹는다.

자금사정이 괜찮은 코스피 기업들의 경우 당장 주가방어를 위해 자사주 취득이라도 나설 수 있지만 자금력이 취약한 대다수 코스닥기업들은 주가 문제가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될 수 있다. 일부 코스닥기업의 경우 특정 세력의 '작전'에 이용되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새 정부 들어 '창조경제'와 함께 중소기업들이 재조명을 받고 있지만 대다수 코스닥 기업들은 구조적 한계로 여전히 자금조달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효율적인 중소기업지원 정책과 더불어 투자자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코스닥기업들 역시 혁신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도 여느 코스닥 상장사 공시 담당실에선 전화벨이 울리고 있을 것이다. 상승장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주가가 하락한 모 기업의 공시담당자는 또 "지금 단체로 본사에 가고 있으니 기다려라"는 협박을 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