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권 脫스펙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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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스펙 평가 부탁드립니다. 학점 3.9, 토익 870, 텝스 691, 자격증은 펀투·AFPK·한자 3급 있습니다. A은행 서류통과 가능할까요?'

취업카페에 흔히 올라오는 이른바 '스펙 상담'의 일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구직자라면 다른 경쟁자들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검색해봤을 법한 내용이다. 댓글에는 '토익 점수는 900점대로 올려야겠네요', '이왕이면 금융 3종 자격증 정도는 따놓으세요.' 등의 조언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이제 금융공기업을 지원하는 구직자들은 이런류의 스펙상담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금융위원회가 올해부터는 18개 금융공기업 신입 채용 과정에서 어학성적과 자격증 기재 항목을 없앤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일부 기관이 추후 어학성적 최저기준 충족 여부만 확인할 뿐, 원칙적으로 사전에 어학점수를 받는 방식은 완전히 폐지된다.

최근 몇년간 취업시장에서 유행처럼 번져오던 '탈스펙' 흐름이 올해부터는 금융당국의 결정 아래 공식화 된 셈이다. 민간 금융기관들도 이같은 당국의 지침에 동참하는 것은 시간 문제인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구직자들의 마음이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이제 취업카페에는 '스펙 상담' 대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거냐'는 질문이 다수를 이룬다. 심지어 일부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고스펙'으로 요약되던 기존의 취업 준비 과정이 편리하지 않냐는 반문도 나온다. 입사하고 싶은 기업에 따라 준비해야하는 과정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 때문이다.

채용하는 금융회사들도 고민은 깊다. 업계 일각에서는 어학성적, 자격증 등 눈에 보이는 스펙을 제외하고 사람을 뽑으려니 판단 기준이 모호해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특히 인재를 거를 수 있는 채용 과정을 기관별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데, 일관된 평가 기준을 마련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이 고안한 탈스펙의 진정한 의미는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가 아닌, '꼭 필요한 능력만을 보겠다'에 가까울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무한경쟁'이 탄생하는 것은 구직자는 물론 금융권도 원치 않는 방향일 것이다. 이번 금융위 가이드라인의 본래 취지에 맞는 '건강한' 채용 문화가 금융권 내에 자리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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