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안전이 세월호 뿐이랴
구멍난 안전이 세월호 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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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사망·실종자를 내며 한국사회의 총체적 난맥상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세월호 소식이 매스미디어를 가득 채우는 사이에 세월호 관련 뉴스에 묻혀 소리 없이 진행되는 또 다른 안전 관련 정책들이나 사건사고들이 적잖다.

안전불감증이 야기시킨 끔찍한 참사뉴스에 온 국민이 진저리를 치며 관심을 모으는 사이에 정부는 또 다시 안전보다는 비용효율을 앞세운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평소에 있을 법한 반대의 목소리마저 묻히며 우리의 안전은 한 번 더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말썽 많은 고리원자력발전소의 원전1호기를 재가동했다. 진실 여부를 떠나 온통 세월호 뉴스만으로 언론이 호들갑 떨게 만들며 모든 국민의 눈을 세월호로 묶어두고 슬그머니 또 다른 위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설계수명 30년을 넘긴지 7년이나 된 고리원전 1호기는 이미 잦은 고장과 그로 인한 가동중단을 거듭해왔다. 그동안 155회의 고장신고가 나왔다고 하는데 이제 새삼스레 정기검사를 하고 안전성을 점검하겠다고 해서 안전을 믿어도 될까. 이번에도 사고가 나서 피할 수 없는 피해를 당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라고만 할 텐가.

세월호도 생산국에서는 그동안 충분히 쓰고 낡아 폐기하려던 선박을 사들여다가 여객선으로 운행하는 것도 모자라 선미 부분을 대폭 증축하고 화물은 적재량을 월등히 초과해 싣고 다니다가 이번 같은 사고를 당했다. 그렇도록 정부는 감독권한을 제대로 행사해 본 적이나 있었나. 규제는 경영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대목에서 풀어야 하는 것이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문제에서는 절대로 풀어줄 수 없는 일인데 정부 감독권의 행사는 거꾸로만 가고 있음이 세월호 사고에서 드러났듯 원전1호기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물론 우리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어디 정부나 해운업계 뿐인가. 금융기관은 돌림노래 부르듯 돌아가며 대량의 정보유출 사고를 내고 개인계좌에 대한 불법조회조차 서슴없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금융기관과 담 쌓고 살 수도 없으니 금융기관 실적에는 그다지 큰 타격이 없다. A금융사에서 정보유출이 발생하면 B금융사를 이용하고 다시 B금융사에서 보안사고가 나면 C금융사로 바꿀지언정 금융이용을 끊고 살 수는 없는 게 현대 사회 아닌가. 카드사들의 대량 정보유출 사고 이후 해당 카드사의 카드 사용액이 줄어든 만큼 정보유출 정보가 없는 카드사의 이용실적이 늘었다는 통계가 그런 사정을 말해주고 있다.

한 사람이 최소한 서너장의 카드를 쓰고 있는 상황이니 이런 바꿔타기가 어려울 것도 없는 까닭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워낙 각종 위험이 광범위하게 산재한 나라에서 살다보니 어지간한 위험도에는 내성이 생긴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전에 살던 동네 아이들은 골목길로 차가 진입해도 급히 피하는 법이 없었다. 놀 공간이 따로 없어서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로서는 늘 골목을 지나는 차량과의 조우가 일상이었기에 특별히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그 골목길 아이들과 얼마나 다를까. 유해식품 소동이 일어도 한동안 요란스레 경계하는가 싶으면 어느 순간부터 슬그머니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출근하면 점심 한끼 이상 외식이 불가피하고 그런 식당들에 대한 정부의 안전 점검이 겉핥기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드니 집에서 가리고 따져 먹는 것이 다 부질없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이대로 계속되면 대다수 국민들은 안전사고, 보안사고를 그저 으레 그러하다고 여기게 되고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불안한 사회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정부와 언론 등 이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행태를 보면 그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지금 정부의 세월호 대응은 단지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선거 여론 진정에만 급급하다는 인상을 준다. 광고가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언론은 생존 차원에서 광고주들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정권은 재벌들의 협조에 목매다느라 국민 안전이 단지 선거 공약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결국 ‘말 잘 들은 아이들’이 무더기로 희생당한 세월호 사고처럼 말 잘 듣는 국민이 더 큰 위험에 직면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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