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잔액 비중 68%…환수율 27.7%
정치인 뇌물 등 범죄에 단골로 등장
[서울파이낸스 채선희기자] 우리나라 최고액권인 5만원권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행한 지 5년이 지났지만 환수율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어 이른바 '검은돈'으로 전락해 지하경제에 악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8일 검찰 등에 따르면, 최근 뇌물 수수 의혹에 휩싸인 정치인들이 받은 금품은 모두 5만원권 현금인 것으로 조사됐다.
철도부품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전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새누리당 조현룡(69) 의원은 1억6000만원을 모두 5만원권 현금으로 받았고 새누리당 박상은(75) 의원과 관련한 거액의 뭉칫돈 의혹도 발단은 그의 운전기사가 차량에서 발견한 5만원권 다발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60)·김재윤(49)·신학용(62) 의원이 연루된 '입법로비' 의혹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김민성(55)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이사장이 이들 의원에게 각각 전달한 돈도 모두 5만원권 현금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검은돈 거래는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으로 10만원짜리 수표를 뇌물용 돈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사과상자 같은 큼직한 상자에 1만원권 현금 다발로 채워 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다 지난 2009년 6월 편의성, 비용절감 등의 면에서 보다 용이한 5만원권이 발행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발행 첫 해인 2009년(연말기준) 5만원권의 발행 잔액은 9조9230억원이었다. 이후 2010년 18조9962억원, 2011년 25조9603억원, 2012년 32조7665억원, 2013년 40조6812억원 등 꾸준히 증가세가 이어지며 한해 7조∼8조원 규모로 늘었다.
이에따라 시중에 풀린 화폐(기념주화 제외) 중 5만원권의 발행 잔액 비중은 2009년(연말기준) 26.6%, 2010년 43.9%, 2011년 53.3%, 2012년 60.3%, 2013년 64.2%로 꾸준히 높아졌다. 올해 4월말기준으로 발행 잔액은 43조8510억원으로 전체 화폐 잔액(64조4540억원)의 68.0%를 차지했다. 장수로는 8억7702만장으로 국민 1인당 17.8장씩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5만원권이 빠르게 유통되는 것과는 달리 환수율은 뚝뚝 떨어졌다. 환수율이란 특정 기간 발행한 화폐가 시중에서 돌다가 다시 한국은행으로 돌아오는 비율을 뜻한다. 5만원권 환수율은 2009년 7.3%로 집계된 뒤 꾸준히 올라 2012년 61.7%까지 높아졌으나 2013년에는 48.6%로 크게 낮아졌다. 올해 1∼5월 발행된 5만원권은 27.7%까지 급락해 지난해 같은 기간의 반토막에 그쳤다.
환수율이 급락하는 가운데 뇌물 수수 등 범죄 현장에서 5만원권이 꾸준히 등장하자, 5만원권이 지하경제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하경제란 정부의 과세나 규제로부터 피하기 위해 합법적·비합법적 수단이 모두 동원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제를 의미한다.
이는 세수확대를 위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겠다는 박근혜정부의 공약 이행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일각에선 5만원권 발행 증가가 지하경제의 규모를 오히려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에대해 한국은행은 연차보고서를 통해 "5만원권 발행 증가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불확실성 확대로 안전자산 선호경향이 강화되고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경제주체의 화폐보유성향이 크게 높아진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