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 기회" vs "기업 투자 위축"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재벌 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공약이다.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기업 세습을 위한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방지하는 것이 골자다. 새 정부의 경제 정책이 국내 경제·금융 환경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법인세율 인상 등 재벌에 대한 견제가 커져 대기업들의 경제활동을 억누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2일 재계 및 금투업계에 따르면 업계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재벌 개혁 정책이 우리 증시에 미칠 영향을 놓고 백화제방식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간 공염불에 그쳤던 재벌 개혁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계기로 범국민적 과제로 부상한 데다, 문재인 대통령도 임기 내 재벌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재벌 개혁의 양면성 = 문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와 재벌적폐 청산을 기치로 강력한 대기업·재벌 개혁 정책을 예고했다. 큰 틀에서 보면 10대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막고 은산분리(산업 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며 계열 공인법인, 우회출자, 자사주를 통한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에 제동을 걸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이같은 정책이 중장기적인 소득 분배와 공정 경쟁 분위기를 조성할 것으로 내다 봤다. 그동안 국내 기업 투자에 걸림돌이 돼왔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완화시키고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상승을 유도해 우리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아울러 재벌 개혁이 증시나 기업 펀더멘털(기초 여건)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근거를 찾기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상원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의 기업 지배구조 수준은 아시아 11개국 중 8위를 기록해 하위권에 머물렀다"며 "일부 찬반 입장이 나눠지고 있지만 신정부의 점진적인 정책 시행을 통해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투명성은 높아질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김유겸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정책이 대기업을 옥죄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 환경을 개선시켜 대기업의 이익은 증가할 것"이라며 "과거 경험상 오너의 지배력 약화가 대기업 주가에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재벌 개혁의 실현성 여부에 대해 난항이 예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마주옥 산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제 민주화를 앞세운 문재인 정부의 상법개정안은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성격으로 기업의 자율성을 제한한다는 반발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법인세율 '다시 도마 위' =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를 보면 문 대통령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은 연평균 35조6000억원이다. 이 중 재정 개혁을 통한 지출 구조조정으로 연간 22조4000억원을 충당하고 나머지 13조2000억원은 세입 개혁을 통해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고소득자들에 대한 소득세 인상,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부동산 보유세 인상 등을 증세 대상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이후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이고 그래도 충분하지 않으면 가장 마지막으로 명목세율을 상향할 계획이다.
현행 상 법인세는 연 200억원 초과 법인에 대해 최고 22% 세율이 적용된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중간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문 대통령은 법인세 인상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며 법인세 최고세율(25%→22%)을 인하한 이명박 정부(2008년) 이후 경제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낙수효과는 거의 없었다는 비판이 힘을 얻으면서 법인세율 인상은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금투업계는 법인세 인상이 외국인 자금의 향방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칠지 주시하고 있다. 김두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은 역대 최대 규모로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고 영국도 G20 중 가장 낮은 법인세율을 목표로 삼았다"며 "문재인 정부가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은 자금 이동에 경계가 없는 금융시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법인세율 변화와 증시 펀더멘탈 변화 사이의 뚜렷한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영향력은 미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효세율이든 명목세율이든 법인세가 인상되면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글로벌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대다수 기업들의 주장이다. 법인세 인상이 기업 순이익의 제약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체 이익 변수와 관련이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재계 유관단체 대부분은 법인세 인상이 투자 감소 배당 등 주주정책 약화로 파급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면서도 "고용 없는 성장, 해외 일변도 투자, 미약한 국내 주주 정책 여건 등을 고려하면 이를 선뜻 동의하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