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금융거래법안 과도한 규제·불안요인"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급결제를 직접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금융위원회의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중앙은행에 대한 과도하고 불필요한 관여"라며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26일 이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지급결제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건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의 태생적 역할이자 고유의 기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총재는 "지급결제시스템 마비시 경제 혼란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중앙은행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의 시스템까지) 포괄적으로 업무권한을 갖겠다는 것은 불필요하고 과도한 규제"라며 "다른 나라는 지급결제청산업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조사했는데, 우리나라보다 훨씬 핀테크에 앞서있는 나라도 관련 업를 중앙은행이 담당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은과 금융위의 갈등 원인은 '지급결제청산'이다. 지급결제청산은 A은행에서 B은행으로 자금을 이체할 때 두 은행 사이에서 채권·재무관계를 지급수단을 이용해 해소하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뱅킹 이체 시 은행끼리는 실제 돈을 주고받지 않고 메시지만 보낸 뒤 나중에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개별 은행이 보유한 한은 계좌에서 돈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은행끼리 정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경우 한은이 최종대부자로 일시적 유동성을 지원하는 만큼 중앙은행의 고유업무로 분류된다. 이런 이유로 한은법 28조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지급결제제도 운영과 관리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심의·의결토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위가 감독권한을 노리고 있는 금융결제원의 경우 1986년 한은이 은행연합회 산하에 있던 전국어음교환관리소와 은행지로관리소를 통합해 설립한 사단법인이다. CD공동망, 타행환공동망, 전자금융 공동망, 어음교환, 지로 등의 지급결제시스템과 공인인증 등 금융분야 핵심인프라의 구축·운영을 맡고 있다. 한은 총재가 사원총회 의장으로 감독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동안 안정적으로 결제업무를 담당해왔다는 평을 듣는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는 전자지급거래청산을 제도화한다는 이유로 지급결제 업무를 맡고 있는 금융결제원 등에 대한 포괄적인 감독권을 갖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핀테크·빅테크에 대한 관리를 위해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을 신설하고, 금융결제원을 포함한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에 대한 허가취소, 시정명령, 기관 및 임직원 징계 권한 등을 갖도록 하는 내용의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한은은 지난 3월부터 금융위의 요청으로 관련 협의를 진행하면서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기존에 한은이 담당하던 업무와 정면 배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은의 반대에도 금융위는 일방적인 법제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법은 윤관석 국회 정무위원장에 전달된 상태다. 한은은 최종안을 확인하지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금융위가 한은 뒷통수를 친 셈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한은이 맡아 왔던 지급결제 감독권한은 금융위에 넘어가게 된다.
위기 시그널에 한은 노조도 목소리를 보탰다. 이날 김영근 한은 노조위원장은 "금융위는 2009년 한은법 개정논의 때 소위 '지급결제제도감독법' 제정을 시도하면서 한은의 지급결제기능 강화를 훼방 놓았다"며 "그때 국회의 반대로 금융위의 법률 제정 시도가 무산된 것은 국회가 지급결제 분야는 중앙은행의 영역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금융위가 어떤 이름으로 현실을 호도하든지, 중앙은행의 존재와 지급준비금을 중심으로 한 지급결제 업무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금융위가 지급결제 분야에서 감독기구임을 자처하는 것은 세계적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