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PR 예외에 기업들 "최악 상황은 피했다"···정부 수출 규제엔 '촉각'
FDPR 예외에 기업들 "최악 상황은 피했다"···정부 수출 규제엔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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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자동차 수출선적부두. (사진=연합뉴스)
울산 자동차 수출선적부두.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호성 기자] 미국 정부가 4일 대(對)러시아 수출통제 조치인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적용 대상에서 한국도 면제해 주기로 하자 국내 기업들은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다며 안도감을 나타냈다.

다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싼 현지 및 글로벌 정세가 어떻게 바뀔지 예단할 수 없어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FDPR은 미국 밖의 외국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사용했을 경우 미 정부가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제재조항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7개 분야의 57개 하위 기술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달 발표 당시 유럽연합(EU) 27개국 및 일본·호주·영국·캐나다·뉴질랜드 등 32개 핵심 동맹국 등과 달리 한국은 FDPR 적용 예외대상에 들지 못했으나 이번에 양국간 고위급 협의를 거쳐 한 발짝 늦게 포함됐다.

앞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3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돈 그레이브스 미 상무부 부장관 및 달리프 싱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등과 연쇄 협의를 가진 뒤 특파원들과 만나 “(한미가) 합의를 함에 따라 57개 비전략 물품에 대해 우리 기업들이 러시아에 수출을 할 때 (미 상무부가 아닌) 한국 당국의 수출통제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FDPR 예외 대상국에 포함이 안 돼 있으면 우리 기업들이 러시아에 수출하는 데 있어 미국 상무부의 수출통제 컨트롤을 받아야 한다”면서 “미국은 한국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모든 국가를 (상대)하다보니 여러모로 불확실하고, 기업들 입장에선 이게 될지 안 될지 행정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여러가지 불확실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여 본부장은 "대러 수출통제와 관련해 한미 양국간 아주 굳건하게 공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면서 "(협의 때) 미국측 분위기는 굉장히 우호적이었고, 특히 한국이 미국과 밀접하게 공조를 하면서 대러 수출통제나 (금융) 제재에 동참해줘 동맹 차원에서 굉장히 사의를 표하는 분위기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른 동맹들처럼 빨리 제재에 참여하지 그랬느냐는 미국 측의 얘기는 없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혀 그런 건 없었다"며 "오히려 한국이 미국과 유사한 수준으로 수출통제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데 굉장히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일) 국정연설에서 (제재 동참 국가로) 여러 나라들을 얘기하면서 한국도 명시하지 않았느냐"며 "(미 당국자들은) 한국을 그렇게 명시한 게 미국이 동맹 차원에서 한국에 대한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고 얘기를 했다"고 했다.

여 본부장은 미국이 당초 FDPR 면제 대상에 한국을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과 관련해선 "우리나라 수출통제 시스템은 미국과 약간 다르게 구성이 돼 있다"면서 "미국과 비슷한 시스템을 가진 나라들은 이것을 바로 시행할 수 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미국과 사전협의가 많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러시아 점유율 1위' 전자업계, 안도의 한숨

전자업계는 FDPR 예외국 인정으로 러시아 사업의 불확실성이 조금이나마 해소됐다고 평가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러시아 스마트폰과 TV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생활가전 부문에선 LG전자와 함께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각각 생산하고 있다.

FDPR이 적용될 경우 가령 미국이 아닌 제3국에서 만든 스마트폰 또는 TV라고 해도 미국의 기술이나 소프트웨어(SW)를 활용해 생산한 경우에는 러시아에 수출 가능 여부를 미국 정부로부터 허가받도야 한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건건마다 수출 심사를 받아야 돼 설사 수출이 가능하더라도 절차상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는데, 이번 예외 조치로 가슴을 쓸어내리게 됐다.

특히 삼성전자의 해외 공장에서 만든 스마트폰 등도 국내 생산품처럼 별도의 심사 없이 수출이 가능하다. 다만 부품 등 중간재를 러시아에 수출할 때는 미국의 수출 허락이 필요하다. 만약 국내 자동차부품 업체가 만든 부품을 러시아의 현대차 공장에 보낼 경우에는 미국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FDPR 수출통제를 받으면 미국 산업안보국으로부터 수출 가능 여부를 일일이 허가받아야 하지만, 다행히 예외국으로 인정받아 예측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이는 한국 정부의 독자 제재 동참을 전제로 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제재 리스트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DPR 예외국으로 인정받은 것은 긍정적이지만,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와 글로벌 기업의 잇따른 '러시아 보이콧'으로 러시아 사업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만큼 이번 사태가 조기에 종료되거나 안정되기 전까지는 상황을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자동차 업계 역시 미국산 기술이나 소프트웨어가 적용된 완성차와 관련 부품이 수출통제 대상이 될 우려가 사라지면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안도를 표하면서도 상황이 급변할 수 있어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자동차산업협회(KAMA) 관계자는 "수출 통제와 부품 수급난으로 인한 현대차 러시아 공장의 가동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면서도 "다만 러시아 내수 시장이 위축되고 달러가 부족해지면서 현지 자동차 판매량이 감소하는 것은 여전히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FDPR 면제국에 포함됐어도 국내 기업들이 반도체 등 FDPR 관련 품목을 러시아로 수출할 때 우리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만큼 완전히 마음을 놓기에는 이르다는 반응도 있다. 실제 정부는 FDPR이 적용되는 비전략물자인 전자(반도체), 컴퓨터, 통신·정보보안, 센서·레이저, 해양, 항법·항공전자, 항공우주 등 7개 분야 57개 기술·품목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로부터 수출 전 허가를 받도록 관련 고시를 개정하는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부품의 경우 가짓수가 워낙 많고 적용되는 기술과 소프트웨어도 다양하기 때문에 수출 제재와 관련된 구체적이고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더욱이 글로벌 컨테이너 운항 선사들이 최근 속속 러시아 운항을 중단하면서 물류 차질과 공급망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이라 국내 산업계의 피해는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차의 경우 앞서 글로벌 물류 차질에 따른 부품 부족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을 오는 5일까지 중단한다고 밝혔는데 이달 생산물량도 절반으로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업계는 아직 현지 공장 가동과 부품 수급에는 문제가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되고 주요 선사들의 러시아 운항 중단이 확대되면 물류망 차질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러시아에 선박 드나들기가 어려워지면서 해상 물류망 차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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