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 전체의 절반 점유···피델리티, 50곳에 5% 이상 지분
[서울파이낸스 남궁영진 기자] 국내 상장사에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외국계 '큰손' 투자자 수가 6년 새 2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국이 거대 자본을 앞세워 국내 기업들을 쇼핑하듯 사들이는 '판다 쇼핑'도 크게 시들해졌다. 미국계 투자자 '블랙록'(블랙록펀드어드바이저스)이 보유 중인 지분 가치는 전체의 절반에 달해, 국내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내 상장사에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외국 투자자 현황 조사'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지난 2016년 3월 조사 내용을 참고해, 이달 20일까지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보고서 등에 명시된 외국 투자자의 국적과 지분 현황을 비교 분석했다. 주식평가액은 지난 24일 종가를 기준으로 계산했다.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6년 3월 국내 상장사에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외국계 큰손 투자자는 모두 227곳이었다. 이 가운데, 2개 이상 상장사에 지분을 보유한 투자자도 여럿 있었는데, 322곳이 5% 넘는 지분을 확보 중이었다. 올해는 164개 외국계 큰손 투자자가 국내 상장사 246곳에 5% 이상 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6년 사이 외국계 큰손 투자자 수는 27.8% 줄었고, 이들이 투자한 국내 상장사도 24%가량 감소했다. 국내 상장사 지분을 다수 확보해 배당과 시세차익을 얻으려 하는 외국계 큰손들이 점차 줄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이들에게 국내 주식 시장의 매력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한국CXO 측은 설명했다.
특히 지난 2016년 전후로 거대 자본을 앞세워 우리나라 상장사 주식을 쇼핑하듯이 다수 지분을 확보해오던 '판다 쇼핑' 현상도 시들해졌다. 중국계 큰손은 2016년 국내 상장사 50곳에서 5% 이상 지분을 보유했지만, 올해는 26곳으로 절반 가까이 급감했다. 국내 상장사 투자를 공격적으로 해오다가 점차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큰손들도 최근 6년 새 국내 주식 시장에서 5% 지분 영향력을 가진 곳이 적어지고 있다. 미국계이면서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이른바 '큰독수리'(Big Eagle)들도 2016년 국내 상장사 121곳에서 다수 주식을 보유했지만, 올해는 102곳으로 19곳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일본계 투자자도 48곳에서 28곳으로 20곳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수는 줄었지만, 지분가치는 되레 증가했다. 2016년 외국계 큰손들이 보유한 지분가치는 42조 원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59조 원대로, 6년 새 40% 이상 뛰었다. 여기에는 미국계 주요 투자자인 블랙록이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한 영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2월, 삼성전자 주식을 5% 넘게 보유한 블랙록은 이달 24일 지분가치가 19조9760억원에 달한다. 올해 파악된 외국계 큰손 전체 주식평가액 59조 원의 34%에 달하는 규모다. 블랙록은 현재 삼성전자 지분을 포함, 국내 상장사 10곳에서 총 29조 8500억 원 넘는 주식평가액을 보유 중이다. 전체의 50.5%로 절반 이상을 점유한다.
그만큼 국내 주식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할 수 있는 항공모함격인 '슈퍼 독수리'(Super Eagle)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블랙록과 함께 100여 곳 미국계 큰손들이 보유한 국내 5%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사의 지분가치만 해도 37조 원에 달했다. 전체 외국계 큰손 지분가치 중 60%가 넘는 비중이다. 여전히 국내 주식 시장에서 미국계 투자자들이 갖는 영향력은 막강한 셈이다.
주식평가액이 아닌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사 현황만 놓고 보면 미국계 큰손 투자자 '피델리티'(피델리티 매니지먼트 앤 리서치 컴퍼니 엘엘씨)가 가장 먼저 꼽혔다. 피델리티는 국내 상장사 50곳에서 5% 넘는 지분을 확보해놓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DB손해보험과 현대해상, 솔브레인에서 1000억 원 넘는 지분을 5% 넘게 보유 중이다.
올해 조사된 국내 상장사 246곳에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외국계 투자자 중 62.6%는 보유 지분을 5~10% 미만 사이에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10%대(지분율 10~20% 미만) 수준은 15.4%로 많았고, 20%대(20~30% 미만)는 7.7% 수준이었다. 50%가 넘는 지분을 가진 외국 큰손도 7.7% 정도로 조사됐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미국을 포함한 중국·일본계 큰손들이 점차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떠나거나 지분을 줄이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며 "이는 코로나 등 경제 사정으로 주요 국가들이 주식을 처분해 현금화하는 측면도 있지만, 국내 주식시장에서 높은 배당과 시세 차익을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한 몫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외국계 큰손들에게 국내 주식 시장에서 다시 매력을 끌게 하려면 신뢰성을 강화해 나가면서 건전하고 투명한 지배구조 등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