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19일 내년도 최저임금 시급을 986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보다 2.5% 인상에 그쳤다. 대략 334만7000명의 저소득 노동자가 이 임금 영역에 들어간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위기를 겪었던 21년에 이은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근래 들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처럼 낮은 인상률로 묶어둠으로써 저소득 노동자들의 삶은 빠르게 궁핍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됐다.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은 저소득층의 실질임금 감소로 이어지고 또한 노동계의 임금협상에 강력한 압박용 지렛대로 작동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 소득의 실질적 감소는 근면함에 대한 사회적 보상을 불신하게 만들고 사회적 폐인을 증가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위험도 있다.
기획재정부 전망으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6%, 물가상승률은 3.5%이고 OECD는 한국의 올해 물가상승률을 3,8%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수치는 올해의 소비수준을 유지하려면 최소 4%의 임금인상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금융소득 대신 금융부채 부담이 더 큰 저소득층의 실상을 감안하면 저소득층의 임금인상률은 물가상승률을 다소나마 상회해야 현상유지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주거안정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저소득층의 불안감이 증폭될 경우 사회적 안정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의 그 시작부터 소비위축으로 경제성장에 지체를 겪었던 전철을 한국이 뒤밟아가는 모양새는 여러 면에서 불안감을 키운다. 그나마 일본은 개인저축이 성장이 지체된 사회를 지탱해주었다면 한국은 세계 최대의 가계부채가 사회적 시한폭탄으로 작동하고 있어 그런 뒷심도 없다는 점에서 위험성은 더 크다.
통상적으로 임금인상은 전년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는 후발성을 띤다. 즉, 올해의 높아진 물가가 반영되어야 현상유지 수준의 소비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특히 대다수 저소득층의 경우 저축 대신 부채를 짊어진, 한마디로 개별 경제체력이 매우 허약한 상태에서 유일한 소득인 임금이 실질적으로 감소할 경우 기본적 생계의 위협에 내몰린다. 수많은 가계의 붕괴로 이어질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토대로 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 가능성의 희망 때문에 노동현장의 활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의 희망을 상실한 노동자들은 사회시스템에서 탈락하거나 이탈하기 쉽다.
이미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절망을 말하고 있다. 그나마 취업일선의 최하층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이 물가상승률을 쫓아가지 못하면 그 절망은 삽시간에 주변으로 전염되며 사회적 활력을 앗아갈 수 있다.
요즘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이 아예 정규직 취업을 포기하고 간헐적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데 만족하며 스스로를 골방 생활 속에 가두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확산되면 사회적 활력은 당연히 떨어지고 창의적 미래설계는 불가능해진다.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미래의 빛이 보이면 앞으로 나아갈 힘이 나지만 미래가 캄캄하다고 여기는 순간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주저앉아버릴 것이다. 특히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헤쳐 오면서도 미래를 꿈 꿨던 부모세대와 달리 갖춰진 사회에서 나고 자란 젊은 세대들은 더 쉽게 좌절할 공산이 크다.
지금 최저임금 영역에 들어있는 노동자들이 꼭 젊은 세대만 있는 것도 아니다. 더 이상 재취업의 기회를 갖기 어려운 중도 퇴직자들이나 노후준비가 미흡한 은퇴 연령층에서도 저소득 노동전선에 서 있다. 노령 저임 노동자들의 경우 당장 생계위협이 더 클 수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가정을 이루고 있는 중도 퇴직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의 실의와 절망은 우리 사회의 미래 자체를 어둡게 한다는 점에서 더 걱정스럽다. 젊은이들이 왜 결혼을 안 하느냐는 말, 왜 아이를 안 낳느냐는 말을 우리 사회는 더 이상 할 자격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임금인상에 인색한 결정은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을 갉아먹는 일이고 또 사회의 지속을 방해하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