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기 주담대, 주거안정 사다리→가계부채 폭증 주범
초장기 주담대 나이제한·DSR 개편 등 언급···시장선 혼란↑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금리 상승에도 가계빚이 늘어나면서 금융 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자칫 활기를 되찾고 있는 부동산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까봐 가계대출의 급증세에 쉽게 손을 대지 못했지만, 최근 추이가 예사롭지 않다는 판단에서 당국도 결국 칼을 빼 들기로 했다.
실제로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역대 최대 규모인 1068조1000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월 대비 6조원 증가한 것으로 지난 2021년 9월 이후 22개월 만에 최대폭이다.
가계대출 확대의 주범으로 지목된 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다. 50년 만기 주담대가 한 달 원리금 부담을 낮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 급증하는 가계대출로 우려를 낳는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주담대를 취급한 인터넷전문은행도 타깃이 된 터라 전반적인 가계대출 문턱이 높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전날 이준수 부원장 주재로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국내 17개 은행장 등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었다. 이번 간담회는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가 가속화하자 당국이 DSR 개편을 포함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차원이다.
당장 당국은 이달부터 오는 10월까지 종합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으로 보고 있는 50년 만기 주담대의 DSR 산정이 적절했는지, 주담대에 적극적인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선 소득심사 등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따져볼 것으로 전망된다. 가계부채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판단하에 정부가 본격적인 가계대출 조이기에 들어갔다는 평이다.
◇'가계대출 급증 주범'으로 지목된 50년 만기 주담대
50년 만기 주담대는 말 그대로 원리금을 50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는 대출 상품이다. 지난 1월 Sh수협은행에서 선보인 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들도 줄줄이 관련 상품을 내놨다. 은행권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취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주담대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은행 입장에서 주담대는 돈 떼일 걱정 없이 쏠쏠한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효자 상품으로 통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동산 경기 부진 여파로 주담대 수요가 꺾였지만, 올해 들어 정부의 주담대·LTV 등 규제 완화, 주택거래량·입주물량 증가 등으로 부동산 시장에 훈풍이 불면서 대출 수요가 늘자 은행권에서 이를 끌어모으기 위한 방편으로 50년 만기 주담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만기가 길어질수록 차주가 매달 내야 하는 원리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DSR 규제에 따른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 물론, 초장기 주담대 상품은 길어진 만기만큼 갚아야 하는 이자부담도 크게 늘어난다. 하지만 집값 상승분이 이자를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란 기대감에 대출 잔액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은행은 우량 자산을 확보하고, 대출 한도가 부족했던 고객은 DSR 규제를 우회할 수 있어 일종의 '윈-윈'할 수 있는 상품으로 여겨진다는 것.
실제로 일부 시중은행에선 초장기 상품 출시 이후 신규 취급한 주담대 중 절반가량이 50년 만기 상품인 것으로 파악됐다. 5대 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 취급액은 지난 10일 기준 약 1조2379억원으로, 같은 기간 514조1174억원을 기록한 은행들 주담대 잔액의 0.24%를 차지한다. 수요가 많은 만큼 이 비중은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당국이 우려하는 것도 이런 지점이다. 당초 당국 역시 초장기 주담대를 꾀했음에도, 가계부채에 대한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는 초장기 주담대가 가계빚 증가세를 자극할 것이란 우려에 규제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현재 50년 만기 주담대에 나이제한을 두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인터넷전문은행도 타깃···바뀐 기조에 업계·소비자 '혼란'
50년 만기 주담대와 함께 최근 급증한 인터넷전문은행의 주담대도 당국의 경계 대상이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의 주담대 잔액이 국내 은행권 주담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규모보다는 증가 속도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은행별로 증가 추이를 살펴보면 카카오뱅크의 주담대 잔액(전월세 제외)은 지난해 2월 서비스를 처음 출시한 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1조1960억원으로 1조원을 넘어서더니 올해 1분기 2조3560억원, 2분기 5조5200억원으로 늘었다.
파격적인 금리 제공과 편리한 절차 등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더구나 출시 당시엔 수도권 아파트를 대상으로 했으나, 물건과 대상지역을 확대하면서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이는 케이뱅크도 마찬가지다. 케이뱅크의 순수 주담대 잔액은 지난해 4분기 1조2000억원에서 올 2분기 2조4000억원으로 두 배가량 뛰었다.
특히 당국은 인터넷전문은행들이 고신용자 비중이 높은 주담대 영업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길 뿐더러 '비대면 영업'을 지목, 소득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이 가계대출 취급실태 종합점검에서 담보가치평가·소득심사 등 여신심사의 적정성을 살펴보기로 한 것도 이런 판단에서다.
당국이 속도 조절을 위한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계대출 관련 규제 가능성은 한층 커지게 됐다. 50년 만기 주담대를 신청할 수 있는 차주의 연령을 제한하는 안과 함께 인터넷전문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출 의무비율을 높이는 안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DSR 개편도 언급된 상황이다. 업계와 시장에선 가계부채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시각 속에서도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여기에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내놓은 특례보금자리론 역시 가계대출 증가를 자극한 요인으로 보고, 속도조절에 나섰다. 올해 특례보금자리론의 공급목표는 총 39조6000억원인데, 지난달 말 기준 이미 78.5%(31조원) 가량이 소진된 상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11일부터 일반형 금리를 0.25%p 인상하는 한편 향후 추이를 보고 공급규모 역시 조절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금융소비자들 사이에선 규제가 나오기 전에 50년 만기 주담대를 서둘러 이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나이제한 가능성에 '역차별'이란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은행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50년 만기 주담대도 애초 주거사다리를 강화하겠다는 정부 정책에 호응한 것인 데다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가계대출이 늘어난 측면이 있음에도 갑자기 기조가 급변, 땜질식 처방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에다 향후 금리인하,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 등 요인이 맞물리면서 가계대출이 늘고 있는 것"이라며 "그간 규제 완화 기조와 반대되는 움직임을 보이면 은행은 물론 소비자들의 혼란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