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게임 등급분류 민간 이양, 공적 가치 확보 우선돼야
[기자수첩] 게임 등급분류 민간 이양, 공적 가치 확보 우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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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도경 기자] 정부가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게임물등급분류 권한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단계적으로 민간에 이양하기로 결정했다. 그 첫 단계로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GCRB)에 모바일 게임 심의 업무를 추가 위탁하고, 향후 청소년이용불가 게임(2단계)과 사행성모사, 아케이드 포함 게임(3단계)를 거쳐 등급 분류의 민간 완전 자율화를 이룰 방침이다.

정부의 게임 소비자 보호라는 방향성은 환영할 만하다. 그간 공적 기구의 심의 제도 아래 발생해온 여러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기대된다. 다만 이번 정책 추진이 충분한 사전 준비와 방안 검토 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민간 자율등급분류제도는 여러 이해관계를 충족하고 공정성과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연구가 선행돼야하는 문제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책 발표까지 유의미한 준비 과정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GCRB는 정책 발표 후 보도가 나가는 시점까지 게임위 등급분류 권한의 민간 이양 사실도 알지 못했다.

게임위가 그간 게임에 대한 전문 인력 부재로 홍역을 치룬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등급분류를 심사할 민간 기구의 전문 인력과 심사를 위한 자본 확충 방안 정도는 준비가 돼야 논의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민간 심의기구에 대한 신뢰 기반이 쌓이지 못한 상황에, 심의 기구 자체가 민간 자본이나 특정 세력에 휘둘리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다.

무엇보다도 등급 분류의 기준이 되는 공적 가치의 확보가 가장 시급한 문제다. 게임물 등급분류제도의 목적은 해당 등급분류에 부적절한 게임물을 제공하는 사업자를 규제하고 이에 노출되는 아동·청소년을 보호함에 있다. 게임의 사행성·선정성 등에 대한 기준이 명확히 자리잡지 못한 지금 시점에 등급 분류 심사의 민간 완전 자율화가 이러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체 규제를 시행해왔음에도 확률 조작 사태를 발생시켰고, 국내 게임 산업을 향한 마이크를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하는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 등은 게임의 선정성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만 15세 이하 등급을 받은 게임 내 여성 캐릭터의 노출을 줄이는 것을 '검열과 탄압'으로 정의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숨기지 않는다. 이를 객관화할 수 있는 공적 가치가 부재한 상황에 민간 자율에만 의존하는 것은 게임을 도박이나 폭력의 온상, 포르노 등으로 규정하는 적대적 의견에 힘을 더하는 꼴이 될 수 있다. 

게임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범국민적 문화 산업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와 이를 바라보는 국민 모두의 목소리를 균형있게 담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을 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학부모나 교육자 등의 의견을 게이머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재하는 것은 게이머를 비(非) 게이머로부터 영원히 타자화하고, 게임이 하나의 문화로서 영화나 드라마, K-팝과 같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길은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게임위가 그간 여러 논란으로 신뢰 자산을 무너뜨려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새롭게 탄생할 민간 기구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게임위의 역할을 단순히 민간으로 이양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바라보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정부는 게임 소비자 보호라는 훌륭한 명목 아래 정책이 보호할 수 있는 소비자의 범위를 넓게 바라보고, 게임 산업 발전과 업계에 대한 신뢰를 함께 도모할 수 있도록 신중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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