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군사 보안 못지 않은 '기업 보안'
[데스크 칼럼] 군사 보안 못지 않은 '기업 보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대 복무 시절은 이제 기억에서도 까마득하다. 함께 복무했던 선후임들, 간부들 얼굴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남자들이 군복무 시절에 대해 마지막까지 기억하는 풍경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기자가 군복무 시절에 대해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끝까지 기억하는 건 군대에서 맡았던 보직(일)이다. 

기자는 전방 지역의 병원부대에서 보안병으로 복무했다. 보안병에게는 '2급 비밀문서취급인가자'라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 자격은 2급 군사기밀까지 열람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주로 하는 일은 보안장교가 기안한 기밀문서를 수정하고 복사해서 문서화하는 것이다. 여기에 비밀문서 합동보관소를 지키는 것도 보안병의 역할이었다. 

그때 일이 대단히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전역하고 기자가 되기 전, 기자를 잠시 그만뒀던 중간에 대형마트나 기업 연구소, 건설현장에서 잠시 동안 보안과 안전에 관한 일을 했었다. 그 때문에 지금 산업부 기자로 일하면서도 기업의 보안과 안전에 대해서는 유난히 관심이 많다. 

'군사기밀'을 취급했던 경험과 비교해보면 기업의 보안은 상당히 허술하다. 과거 보안직원으로 근무했던 한 기업의 연구소에서는 야간에 기밀문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퇴근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기자가 된 후에는 한 기업의 기자실에서 대외비 문서가 이면지로 활용되는 걸 목격한 적도 있다. 

이는 기밀의 중요도에 대한 차이 때문이다. 군사기밀은 한번 노출되면 군 경계태세가 뚫려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군필자들은 다들 알겠지만, 초병 근무시 숙지하는 암구호도 전부 기밀사항이다. 암구호가 노출되면 초병이 경계근무하는 지역이 모두 적에게 노출될 수 있다. 

기업의 기밀은 주로 기술이나 핵심 생산시설, 연구시설 등에 대한 내용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경쟁사에 노출된다면 기업의 경영활동에 장애를 초래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중요한 사항이지만, 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 기업이 '반도체 기업'이라면 어떨까? 지난달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은 99억5000만 달러로 전체 수출 524억1000만 달러의 18.9%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무역수지의 적자와 흑자를 결정 지을 수 있는 핵심품목이라는 의미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보안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빈번하게 들려오고 있다. 나쁜 마음을 먹은 임직원을 막는 일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사업 하나가 국가경제를 좌지우지한다면 그 기업에 대한 보안도 군사보안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다. 이는 사이버보안이나 시설보안 모두에 해당된다. 

기업은 보안을 더 철저히 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밀문서 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저장매체 보관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군대에서는 업무용 컴퓨터에도 기밀문서를 저장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업에 속도를 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안전하게 사업을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래서 기밀사항은 보다 신중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직원이 불순한 마음을 먹었다면 그 또한 보안사고다. 얼마전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메모리) 핵심연구원이 경쟁사인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일이 있었다. SK하이닉스는 해당 직원이 전직 금지 약정을 어겼다며 법원에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이를 인용해 해당 직원에게 전직 금지 서약을 위반했다며 매일 1000만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핵심연구원이라면 회사에 더 오래 머무르도록 대우를 잘 해주는 것도 보안을 더 잘 유지하는 일일 것이다. 

반도체뿐 아니라 자동차, 조선 등 우리나라 핵심 산업 대부분에서 '보안'은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더 격화되면서 살아남기 위해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시장경제가 전쟁터와 같다면 기업의 보안도 군사보안과 맞먹을 정도로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여용준 산업1부 차장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