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연체율 급등에 대출 문턱 높아진 영향
[서울파이낸스 정지수 기자] 시중은행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신용점수 900점(1000점 만점) 이상인 고신용자 차주들이 저축은행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26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3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신용대출 평균 신용점수는 927.6점으로, 전월(922.9점)보다 4.7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899.6점)까지만 해도 900점을 밑돌았는데, 12월 918.4점, 올해 1월 923점, 2월 926점을 거쳐 4개월 만에 30점 가까이 오른 것이다.
신용등급의 기준이 되는 신용평가사인 KCB(코리아크레딧뷰로) 점수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1등급 942~1000점 △2등급 891~941점 △3등급 832~890점 △4등급 768~831점으로 통상 3등급까지 고신용차주로 분류된다. 하지만 3등급 차주는 시중은행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진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4분기 가계 빚이 1886조원을 넘기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면서 금융 당국이 관리 방침을 밝히자 시중은행들은 대출 문턱을 높였다. 여기에 연체율 증가세 역시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의 연체율은 올해 1월 기준 0.45%로, 전월 말(0.38%)보다 0.07%p 상승했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고금리 장기화,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대출을 갚지 못하는 차주들이 늘어난 탓이다.
차주들의 평균 신용점수가 높아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 통신비나 건강보험료 납부 정보 등 비금융정보도 신용점수에 반영되면서, '신용점수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했다. 신용평가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신용점수가 900점을 넘는 사람은 2149만3046명으로 전체의 43.4%를 차지했다. 950점 이상의 신용점수를 받은 사람도 1315만명으로, 1년 만에 147만명이 늘었다.
신용점수는 각 개인에 대한 수많은 신용정보를 종합해 향후 1년 내 90일 이상 장기연체 등이 발생할 가능성(위험도)을 통계적 방법에 따라 1~1000점으로 평가한 체계다. 1000점에 가까울수록 연체 등 리스크가 낮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못 받은 고신용자들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자산 규모 상위 5대 저축은행(SBI·OK·한국투자·웰컴·애큐온저축은행)의 신규 신용대출 중 800점대 이상 차주 비중은 전체의 20.9%에 달했다.
저축은행별로 살펴보면, SBI저축은행의 경우 신용점수 800점 이상의 차주 비중이 36.91%로, 전년 말 대비 0.74%p 상승했다. OK저축은행은 전년 말보다 11.14%p 상승한 27.71%를 기록했다. 한국투자저축은행은 8.18%p 상승해 29%를 차지했다.
문제는 건전성 관리를 위해 시중은행보다 먼저 대출 문턱을 높인 저축은행마저 고신용자로 채워지면서 중‧저신용자들은 불법 사금융 등 제도권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연체율이 오르자 대출심사 기준을 강화하면서 건전성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며 "고금리 장기화 상황에서 중·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