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시프트업 '스텔라 블레이드'···'K-콘솔' 새 지평에도 만족할 수 없는 이유
[체험기] 시프트업 '스텔라 블레이드'···'K-콘솔' 새 지평에도 만족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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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최적화와 액션 경험···필드·크리처 디자인도 '만족'
아쉬운 스토리텔링과 캐릭터···후반부 퍼즐·레벨 디자인 '감점'
韓 개발사 첫 콘솔 도전작···더 나은 게임 쏟아지는 계기 되길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캡처)
스텔라 블레이드 초반부 맵 '침묵의 거리'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캡처)

[서울파이낸스 이도경 기자] 어느 순간부터 한국형을 뜻하는 접두어 'K-OO'은 비하와 조롱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제품, 문화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본래 뜻에서 벗어나 '한국형'의 부정적 특징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용례가 바뀐 것이다. 

게임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국산 게임의 위상을 자랑하던 'K-게임'이란 말은 언젠가부터 확률형 아이템 등 극악한 BM(사업 모델)을 자랑하면서도 게임성은 중국 게임에도 밀리는 현실을 조소하고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특색없는 이야기와 어디서 베낀 듯한 시스템은 덤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프트업이 야심차게 준비해 지난 26일 내놓은 콘솔 게임 '스텔라 블레이드'는 'K-게임'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술 '강력한 한 방'이었다. 국내 게임 최초로 플레이스테이션 독점 플랫폼으로 출시된 스텔라 블레이드는 메타스코어 82점, 유저 스코어 9.1점(10점 만점)을 받으며 평단과 이용자들의 호평을 동시에 받았다.

과연 스텔라 블레이드는 'K-게임'의 위상을 드높일 선봉에 자리할 수 있을까. 기자가 직접 플레이해봤다.

◆ 완벽한 최적화와 액션 경험···필드·크리처 디자인도 '만족'

스텔라 블레이드의 튜토리얼 경험은 실망을 넘어 짜증이 밀려왔다. 이야기에 녹아들 틈도 없이 대뜸 떨어진 전쟁터, 표정 변화 없이 입술만 뻐끔거리는 캐릭터, 주인공만 알고 플레이어는 모르는 파트너(혹은 스승)의 죽음 등 그간의 'K-게임' 특징을 그대로 가져왔다. 게임의 그래픽과 버라이어티를 초반에 강조하기 위한 선택임은 알지만, 너무 식상하다 못해 쉬어버린 모습이지 않은가.

다만 튜토리얼을 지나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 후에는 금새 '기분 좋은 배신'을 당했단 사실을 알게 된다. 국내 게임사의 첫 콘솔 도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최적화가 그 첫 번째다. 게임을 시작한 후 엔딩에 이르기 까지 체감되는 프레임 드랍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격렬한 보스전을 포함해 수많은 오브젝트가 뒤엉키는 공간에서도 부드럽고 쾌적한 플레이가 이어졌다.

게임의 액션성도 감탄을 자아냈다. 기본적으로 적의 공격에 패링(받아치기)과 회피로 대응하고 짧은 딜타임 동안 데미지를 최대한 누적시킨 후 다시 공격 타이밍을 찾는 형태로 전투가 구성되는데, 공격 버튼 연타로 적을 썰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공방 합을 중시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타격·패링·회피·스킬 사용 등 모든 액션의 이펙트가 화려한 것은 물론 디테일한 패드 진동까지 동반해 짜릿한 손맛을 더했다. 심지어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이브'의 손등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물길을 걷는 자박거림까지 진동으로 구현된 정도다. 통상의 액션 게임들과 달리 대형 보스 몬스터도 경직이 걸리도록 만들었는데, 보스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일부 구간에서의 손맛이 떨어지지 않았다.

게임의 일부 보스는 원거리 무기만으로 처지해야 한다.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캡처)

공격과 패링 시에는 '베타 게이지'가 쌓여 강력한 한 방인 '베타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베타 스킬은 적을 다운시켜 일부 패턴을 무시하고 추가로 데미지를 누적할 수 있고, 패링을 하거나 베타 스킬을 적중하는 것으로 적의 균형 게이지를 깎아 치명타를 낼 수도 있기 때문에 게임 중반 '버스트 스킬'을 개방한 후에도 핵심으로 운영하게 된다.

'버스트 스킬'은 패링이 아닌 회피에 성공하는 것으로 게이지를 쌓아 사용할 수 있는데, 일시적으로 공격력·공격 속도를 높이거나 광역 공격 후 체력을 회복하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10여 개 이상의 기본 공격 커맨드와 회피 후 반격, 원거리 공격 등 다양한 액션 루트가 준비돼 다채로운 전투 경험을 제공한다.

게임의 배경과 크리처 디자인 역시 훌륭했다. 폐허가 된 주차장, 공사장 등을 거쳐 인류 최후의 도시 '자이온'의 황량한 풍경, 괴물 '네이티브'에 감염된 연구실과 지하철 등 필드 디자인과 다채로운 크리처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자랑했다. 원거리 무기만으로 퍼즐 스테이지를 돌파하거나, 낙하 중 톱날을 피하는 등 각 맵마다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은 '툼 레이더' 시리즈나 '언챠티드' 시리즈가 떠올랐다.

게임의 난이도는 쉬운 편이 아니다. 처음 조우하는 보스는 패턴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클리어가 어렵고, 소위 말하는 '딜찍누(딜로 찍어 누르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충분한 스킬 게이지를 확보하기까지의 패턴만 파악하면 클리어까지 닿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실력이 단기간 내 늘어난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회피와 방어 타이밍을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스토리 모드' 등 난이도 조절도 가능해 조작이 미숙한 플레이어도 게임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스텔라 블레이드 NPC '릴리' 이미지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캡처)
스텔라 블레이드 NPC '릴리' 이미지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캡처)

◆ 아쉬운 스토리텔링과 캐릭터···후반부 퍼즐·레벨 디자인 '감점'

전투 경험만을 놓고 보면 스텔라 블레이드는 회사의 첫 콘솔 도전작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해냈다. 플레이 내내 다음 전투를 기대하게 만들고, 실패의 경험은 재도전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액션 게임'으로서는 제작 경험이 풍부한 글로벌 게임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아쉬운 점은 이처럼 완벽한 액션과 전투 경험에도 스텔라 블레이드를 '범작' 수준에 머물게 만드는 수많은 요인들에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게임의 내러티브다. 플레이어는 인류에게서 지구를 뺏은 괴물 '네이티브'를 말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특수부대원 '이브'가 돼 적들을 쓰러트리게 되는데, 이야기의 전개와 반전이 유사 장르의 클리셰를 따라가면서도 크게 열화된 모습을 보인다.

통상 인간과 로봇을 주제로 한 SF 아포칼립스 장르의 경우 인간의 정의와 올바른 미래의 방향 등 철학적 고찰을 바탕으로 하지만, 본 게임은 유사 장르의 특징을 짜집기했을 뿐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고심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데다 주제의식마저 모호하다. 후반부 쏟아지는 반전 역시 예상 가능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이를 전달하는 연출 또한 빈약하다.

캐릭터의 매력 부재는 스토리의 빈약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부족한 성우 연기는 둘째 치고, 모든 캐릭터가 이야기 전개를 위한 부품으로 활용될 뿐 플레이어에게 감정과 행동 동기 등을 설득할 여지 자체가 없다는 점이 이브를 비롯한 게임 내 캐릭터의 인기 요인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모두 모바일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스텔라 블레이드 보스 '타키' 이미지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캡처)
스텔라 블레이드 보스 '타키' 이미지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캡처)

게임의 단점이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에 치중돼있다면 이야기를 중시하지 않는 플레이어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후반부의 퍼즐 파트와 레벨 디자인이 중반부까지 이어진 훌륭한 플레이 경험을 크게 깎아내렸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단적으로 중후반부의 '대사막' 파트는 필드 디자인과 퍼즐, 연구소와 보스 등 이전 '황무지' 파트의 경험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어떻게든 플레이 타임을 늘리고 말겠다는 악의로 가득 차있다. 이미 경험한 콘텐츠를 다시 진행하는 것과 다름없으면서도 불필요한 동선을 강요하고, 퍼즐과 미션의 난이도를 높여 수많은 반복 플레이를 요구한다. 

이는 보스 구간에서도 두드러지는데, 게임의 보스 난이도는 후반부 보스인 '타키'와 '레이븐'을 시작으로 급격히 올라간다. 문제는 난이도를 올리는 요인이 패턴의 복잡성 보다도 보스의 높은 체력과 공격력에 있다는 것이다. 스텔라블레이드의 보스는 기본적으로 공격과 스킬로 '실드'를 모두 깎아내지 않으면 제대로 된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데, 실드를 회복하는 페이즈 전환이 잦아지며 유의미한 딜타임도 줄어들게 된다. 트라이 시간이 늘어날 수록 피로도도 올라가고, 재도전 욕구는 크게 떨어진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파밍(아이템을 찾아 얻는 행위)을 통해 공격력과 체력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다만 몬스터 사냥으로 '소울'을 수급해 스텟을 올릴 수 있는 소울라이크 장르와 달리 캐릭터의 성장 요인이 파밍에 집중돼있어, 트라이가 막힐 때마다 맵 전역을 돌며 탐색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피로도는 더욱 높아진다.

이처럼 플레이 타임을 잡아 늘리려는 노력에도 엔딩까지 걸리는 시간은 30시간에 조금 못미치는 수준이다. 본작의 가격이 약 8만원에 이르는 풀 프라이스 게임임을 감안하면 결코 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임 내 숨겨진 서브 퀘스트까지 모두 클리어한다면 플레이 타임은 더욱 늘어나겠지만 부족한 스토리와 플레이 타임, 지나친 반복 경험이 더해져 엔딩을 본 후에는 게임이 어딘지 모르게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캡처)
(사진=스텔라 블레이드 캡처)

◆ 국내 개발사의 첫 콘솔 도전작···더 나은 게임 쏟아지는 계기 되길

게임의 장점과 단점을 항목 별로 분류한다면 스텔라블레이드는 아직까지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고 느껴지는 게임이다. 그럼에도 게임이 이처럼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그 장점이 나머지 단점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이 게임의 액션과 손맛 등 감각적인 영역을 중시하는 플레이어라면 스텔라 블레이드는 단연 뛰어난 게임이다. 플레이어에게 극한의 액션을 제공하기 위한 수많은 연구와 노력이 돋보이며, 최적화는 수 년을 콘솔 게임에 쏟아부은 글로벌 제작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반면 게임의 체험적 경험을 중시하는 플레이어라면 이 게임으로 100%의 만족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텔라 블레이드가 국산 콘솔 게임으로서 기록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입지적 작품임은 분명하지만,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K-게임'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던지지도 못한 것이 사실이다. 칭찬할 것은 칭찬하되, 한국 게임 산업이 글로벌 콘솔 시장에서 본격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목표가 '제 2의 스텔라 블레이드' 만들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는 스텔라 블레이드가 불러온 하나의 '열풍'에 대한 우려일 뿐, 이 게임이 콘솔 게임에 첫 도전한 회사의 작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 첫 작품이 반드시 완성형일 필요는 없다. 더 나은 게임을 향한 기준점이자 과도기적 작품이면 충분하고, 스텔라 블레이드는 그 역할을 정확히 해내는 데 성공했다. 

게이머들의 취향이 기존 모바일·MMORPG에서 글로벌 게임사가 강점을 가지는 콘솔로 이동하고 있다. 이번 스텔라블레이드가 우리나라에서 더욱 발전된 콘솔 게임이 쏟아질 수 있는 분수령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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