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NOW] 대한민국 인구 5000만명 돌파···삼풍백화점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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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브렉시트 공식 결정···韓 경제에도 영향
美 경제·사회 거물 사망···일론 머스크 출생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0.92명을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2012년 6월 23일, 대한민국 인구 5000만명 돌파

통계청은 2012년 6월 23일 우리나라 인구가 공식적으로 50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1983년 4000만명을 돌파한 후 29년만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고 인구가 5000만명 이상인 전 세계 7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인구 기반이 탄탄해지면서 경제성장의 꽃길만 걸을 것 같았지만, 이미 이때부터 인구 감소의 징후는 드러나고 있었다. 이미 1983년에 출산율은 2.06명을 기록하며 인구 유지 마지노선을 기록했다. 이후 2010년 1.23명까지 떨어지면서 인구 감소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다만 당시 출산율은 2005년 1.08명을 기록한 후 증가세에 접어든 터라 정부에서는 출산율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통계청이 예상한 2020년 출산율은 1.35명이었다. 그러나 실제 2020년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출산율 감소는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인구가 5000만명을 돌파했던 2012년은 어쩌면 우리 경제에 '영광의 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브렉시트 (사진=픽사베이)
브렉시트 (사진=픽사베이)

◇ 2016년 6월 24일, 영국 EU 탈퇴 결정

2016년 6월 23일 시작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찬반 투표가 다음날인 24일 오전 6시에 끝났다. 개표 결과는 찬성 51.9%, 반대 48.1%로 영국은 소위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영국의 브렉시트는 우리 경제에도 큰 영향을 줬다. 당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30원 가량 폭등했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국가에서 주식시장에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선물 시장에서도 외국인 투자자의 매물이 대거 쏟아졌고 유럽에 나가 있는 우리 기업이 받을 타격에 대한 분석과 대응이 분주하게 이뤄지기도 했다. 정부 역시 기존 한·EU TFA 영국과 FTA를 재검토하기 시작해 2019년 8월 22일 FTA를 체결했다. 결과적으로 브렉시트는 실패로 나타났다. 지난해 영국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영국 국민 중 브렉시트가 성공했다고 보는 의견은 9%에 불과했다.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영국 경제가 악화된 것에 브렉시트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커지면서 다음달 4일로 예정된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의 압승이 예상되고 있다. 이전 다수당이었던 보수당이 소수당이 된다면 우리나라와 관계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프레드 트럼프. (사진=위키피디아)
프레드 트럼프. (사진=위키피디아)

◇ 1999년 6월 25일, 프레드 트럼프 사망

프레드 트럼프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트럼프 기업의 설립자다. 프레드는 아들 중 부동산 사업에 재능을 보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회사 일을 맡겼고 1971년 그를 회장직에 앉힌다. 이는 우리가 모두 아는 경영자 도널드 트럼프의 탄생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프레드 트럼프의 차남이다. 도널드에게는 위로 1명의 형과 누나 2명, 밑으로 남동생이 있었다. 만약 그의 다른 형제가 사업에 재능을 보였다면 미국과 세계의 역사는 조금 달라졌을까? 도널드 트럼프에 따르면 그의 형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는 모두의 사랑을 받는 평화수호주의자다. 잠시 아버지의 사업을 맡았을 때도 입주자들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줘 수익을 내지 못했다. 프레드 트럼프의 눈에 장남은 사업수완이 부족해보였다는 의미다. 후계자를 선택한 것은 아버지 프레드의 몫이다. 만약 그가 사업수완이 아닌 다른 면모를 보고 장남에게 회사를 물려줬다면, 미국과 세계의 역사는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 1997년 6월 26일,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출간

영국의 작가 J.K.롤링이 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이날 첫 출간됐다. 이후 '해리포터' 시리즈는 7편의 본편과 4편의 스핀오프가 출간됐다. 소설뿐 아니라 영화와 연극, 게임 등으로 만들어지며 '해리포터' 시리즈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소설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해리포터'의 사례는 잘 만든 콘텐츠의 경제적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리포터' 소설이 가져다 준 인세 수입만 11억5000만달러이고 영화 전체 흥행수익은 77억달러에 이른다. 1993년 '쥬라기 공원'이 처음 개봉했을 당시 TV 뉴스에서는 '영화 한 편이 우리나라 1년 자동차 수출액만큼 벌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콘텐츠의 힘은 그만큼 막강하다. 일본 대중문화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공한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풍성한 콘텐츠 사업에 있다. 우리나라도 BTS와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을 통해 콘텐츠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했다. '해리포터'의 성공은 콘텐츠 산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작은 사례'다. 콘텐츠는 힘이 세다. 

앨빈 토플러. (사진=뉴욕타임즈)
앨빈 토플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2016년 6월 27일, 앨빈 토플러 사망

앨빈 토플러는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미래학자다. 20세기에 10대 시절을 보낸 학생이라면 '청소년 필독서'로 언급되던 '제3의 물결'을 기억할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제1의 물결을 '농경시대'로, 제2의 물결을 '산업화시대'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 책에 언급된 '제3의 물결'은 '지식정보시대'다. 이 책은 재택근무와 전자정보화 가정, 에너지 자급자족을 통한 소량 맞춤형 생산 등이 언급된다. 이 책이 출간된 시기가 1980년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날카롭게 미래를 내다 본 셈이다. 앨빈 토플러는 2008년 아시아태평양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적이 있다. 여기서 앨빈 토플러는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을 비판하며 "교육이 퇴보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약 16년의 시간이 흘러 그의 말을 되돌아보니 섬뜩한 경고처럼 들린다. 지식정보시대의 정점에 서있는 우리나라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앨빈 토플러의 경고를 다시 꺼내볼 필요가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사진=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사진=연합뉴스)

◇ 1971년 6월 28일, 일론 머스크 출생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가정에서 태어난 일론 머스크는 아버지의 기술사 자격 덕분에 어릴 때부터 부유하게 자랐다. 그리고 그 영향 때문인지 일론 머스크도 공학에 큰 관심을 보였다. 199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에 편입한 일론 머스크는 본격적으로 공학도의 길을 걸었고 우리가 아는 테슬라의 CEO가 됐다. 테슬라는 2024년 6월 시가총액 5896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 전기차 기업이 됐고 일론 머스크 본인 역시 1976억달러의 자산으로 포브스 선정 세계 3위의 부자가 됐다. 현재 테슬라는 중국 BYD의 물량공세에 밀려 점유율 2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기차 시장에서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일론 머스크는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과도 면담을 진행했으며 SNS를 통해 한국의 저출산과 인구 감소를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다. 또 테슬라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는 주요 기업 중 하나다. 이 세계 최고의 괴짜 부자는 한국과도 인연이 꽤 깊은 편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사진=국가기록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사진=국가기록원)

◇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유난히 무더웠던 6월의 어느날 오후, 서울 강남의 초대형 백화점이 순식간에 주저 앉았다. 원인은 부실공사와 안전관리 미흡이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이다. 이 사고로 무려 502명이 목숨을 잃었고 937명이 부상을 입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발생한 대형 붕괴사고였으며 또 다시 '인재(人災)'였다. 당시 삼풍백화점은 삼풍건설산업과 우성건설이 지었고 삼풍건설사업 유통사업본부가 운영했다. 당시 삼풍백화점 부실공사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준 삼풍건설산업 창업주는 업무상 과실치사와 뇌물공여 혐의로 징역 7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사고 이후 삼풍건설산업은 법인 청산절차를 거쳐 1997년 폐업했다. 5층짜리 백화점이 통째로 무너지는 사고는 지금으로써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난해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사고는 삼풍백화점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여전히 뉴스와 유튜브 고발 채널에서는 아파트나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를 부실하게 지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우리의 건설 역량은 30년전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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