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이도경 기자] 정부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를 위한 논의에 본격 나서는 가운데, 의료계의 성급한 판단이 게임 이용자들에 대한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마띠 부오레 네덜란드 튈뷔르흐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5일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게임산업협회가 개최한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에 참석해 "학계 분위기를 보면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등재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문제"라며 "개인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치료받을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매일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애에 대한 낙인이 찍힐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게임 이용에 대해 질병코드를 부여했을 때, 전체적인 관점에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라며 "게임이 문제 행동을 만들어내는 루트 코드가 되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만큼 (이 문제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총회 위원회에서 국제 질병분류의 개정판인 'ICD-11'에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 '6C51'로 등재했다. 이는 도박중독과 같은 중독성 행위장애에 해당한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할 만한 필요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됐다"며 이같은 내용의 ICD-11에 대한 국내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조문석 한성대 사화과학부 교수는 게임이용장애가 문제 행동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며, 의료적 개입을 위한 논의가 보다 신중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국제질병분류(ICD)가 KCD에 등재되지 않은 사례가 없기에, 과거추세를 본다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국내 등재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의료적 개입을 결정하기에 앞서 게임이용에 따른 긍정적 경험 등 게임 관련 연구주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연구진들이 4년간 게임이용장애와 문제 행동 사이 직접적 요인이 있는지 연구했으나 명확한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이는 게임 그 자체가 직접적 원인이라기 보다, 이용자의 심리적·사회적 선행요인이 작용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앤드류 쉬빌스키 옥스포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는 "성인의 절반 이상은 게임, 스마트폰, 혹은 소셜미디어 등 기술에 빠져있지만, 이를 중독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영국은 게임 자체를 중독물질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흉기난동 등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원인으로 게임이 지목되는 사례에 대해서는 "15년 전만 하더라도 비디오게임이 폭력이나 범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으나, 많은 연구와 조사로 게임이 더 이상 폭력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본다"며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주말에 게임이 새로 출시되거나 업데이트 버전이 발표될 때 범죄 비율이 오히려 줄어든 결과가 나타났다"고도 설명했다.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은 "총리실 주관 하에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가 함께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논의 중"이라며 "자칫 원인과 결과가 뒤섞이면 제대로 된 진단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고 결과를 도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