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계 서열 1위 기업 삼성이 느슨했던 분위기를 일신하고 성장을 위한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그룹 내 주요 계열사들에서 근무강도를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은 삼성바이오에피스였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임원 회의를 통해 신입사원들의 업무 및 교육강도를 높이라고 주문했다. 특히 "직원들이 저녁을 먹고 퇴근할 정도로 일을 시키고, 업무가 없다면 교육이라도 시켜라"고 지시했다.
삼성전자도 근무강도를 높이고 있다. '맹장'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전영현 부회장이 선임된 후 삼성전자 임원들은 주 6일 근무를 부활시켰다. 임원들의 업무시간이 늘어나면서 소속부서 직원들의 근무강도도 높아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달부터 원격근무자들도 웹캠을 켜고 안면인식시스템에 접속한 후에 일하는 방식을 시범운영키로 결정했다. 사측은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고육책이라고 밝혔지만 노동조합과 직원들 사이에서는 근무강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이 이처럼 사내 분위기를 경직시키면서까지 근무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은 대외 경영환경이 날이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어서다.
반도체산업에서는 시장주도권을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대만의 TSMC에 내주면서 위기감이 높아진 상태며, 미래먹거리로 선택한 바이오사업부문은 아직까지 글로벌 주도권을 잡을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다. 여기에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다른 사업들 역시 업황침체와 중국의 성장으로 인해 미래가 불안하다.
재계에서는 이런 이유로 삼성이 혁신 대신 쇄신을 먼저 선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모험보다는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 생존이 먼저라는 판단을 내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문제는 삼성 경영진의 선택이 자칫 인재유출이라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2030 직원들 사이에서 업무시간 연장과 근무강도 강화는 반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요 계열사들이 근무강도를 높이기로 결정한 후 MZ세대 직원들을 중심으로 사측의 결정에 우려와 아쉬움을 드러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근무강도를 높인다고 해서 대외 불확실성이 해결할 수 있느냐"고 되묻고 있다.
특히 "기업경쟁력 약화의 책임은 기업경영의 방향을 결정하는 임원들이 져야 하는 것"이라며 경영진의 쇄신을 촉구하는 분위기다.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생전 "한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다. 삼성 역시 선대회장의 지론을 받들어 인재확보와 육성에 최선을 다해왔다. 자칫 이번 쇄신이 인재유출로 이어진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삼성 경영진의 쇄신에 속도조절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서종열 산업1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