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 연임 '초미의 관심사'···'파벌문화' 타파도 '촉각'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우리금융그룹이 자회사 CEO 후보군 관리를 위한 '최고경영자 육성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우리은행장을 비롯해 연말 자회사 CEO들의 임기가 대거 종료되는 만큼 후보군들에 대한 자질을 면밀히 검증하겠다는 복안이다.
CEO 육성프로그램이 개시되면서 조병규(59) 우리은행장의 연임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손태승(65)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으로 현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진 데다 그룹 내부의 '파벌문화'를 쇄신해야 하는 과제도 있는 만큼 차기 은행장 선임 결과는 여러모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것이란 분석이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 사외이사들과 주요 자회사 CEO들은 이날 오후 서울 모처에서 열린 '최고경영자 육성프로그램' 연수에 참여했다. 자회사별 경영 현안과 내년도 중점 추진 사업 등을 논의하는 자리로, 특정 안건을 의결하는 이사회나 자회사추천위원회(자추위) 성격은 아니라는 게 우리금융 측 설명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지난해 은행장 선임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회사 CEO를 장기적으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그 최고경영자 육성프로그램을 오늘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우리금융은 지난해 5월 '우리은행장 선정 프로그램' 관련 간담회를 열고, 차기 리더 육성 단계에서 임원들을 대상으로 연간 최소 50시간 이상의 필요역량 연수를 진행하는 한편, 비중 있는 리더를 선임할 땐 새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실제 우리금융은 본부장급 임원 중 2~3년 차부터 리더로서의 역량을 갖추도록 연수에 참여시키는 등 관리를 해왔다.
이날 이사진과 경영진의 회동은 CEO 풀(pool)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리더역량 육성 연수지 차기 CEO 후보군을 추리는 자리가 아니라는 설명이지만, 사외이사 7인 전원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물밑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졌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앞서 우리금융은 지난달 27일 첫 자추위를 열고 인선 레이스를 본격화한 바 있다.
특히, 우리금융 자회사 7곳의 CEO 임기가 연말 종료되는데, 핵심 자회사이자 그룹 2인자격인 우리은행장이 어느 정도 결정돼야 다른 자회사들의 승계 절차도 본격화할 수 있다. 우리금융이 우리은행장 선임에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올해 말 임기가 종료되는 사장단은 조 행장을 비롯해 △박완식(60) 우리카드 사장 △정연기(60) 우리금융캐피탈 대표 △이종근(60) 우리자산신탁 대표 △최동수(62) 우리금융에프앤아이 대표 △이중호(61) 우리신용정보 대표 △김정록(62) 우리펀드서비스 대표 등 7명이다.
시장의 관심은 조 행장의 연임 성공 여부에 쏠려있다. 조 행장은 임종룡(65) 우리금융 회장이 취임 이후 2개월여간 진행한 '은행장 승계프로그램'을 통해 임명한 인사다. 뛰어난 영업력으로 내부에서 인정받던 조 행장을 임명했고, 실제 올해 3분기(누적)까지 사상 최대인 2조524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뚜렷한 성과를 보여줬다.
그러나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과 끊이지 않는 횡령 사고가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은행에서 올해에만 경남 지역 영업점 100억원대 횡령사고(6월), 55억원 규모 오피스텔 분양대금 대출사고(7월) 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조 행장에 대한 책임론이 나왔다.
현 경영진에 대한 금융당국의 부정적인 시각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우리금융 현 경영진이 손태승 전 회장 부당대출 늑장보고 등의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고성 발언을 여러차례 한 바 있다. 조 행장이 보여준 성과와 금융당국과의 관계 설정 사이에서 우리금융 이사회가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아울러 이번 은행장 인사는 임 회장이 선언한 '파벌문화 타파' 의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일종의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임 회장은 지난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우리금융이 여러 은행이 합하다 보니 통합 은행으로서의 성격 때문에 계파적인 문화가 잔존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이런 음지 문화를 없애야 우리금융이 바로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임 회장으로선 우리금융 내 뿌리 깊은 계파주의를 벗어난 중립적 성향이면서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받아든 셈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은행의 경우 '출신'이 어디냐에 가장 큰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며 "이를 벗어난 선택지는 결국 '파격인사'일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조직 안정성 측면에서 리스크가 있을 수 있어 누구를 선임해도 부담되는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