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건설사도 대금 지연···10대 건설사 중 6곳
피해는 종사자가···업계 임금 체불 1년 새 26%↑
"이슈 '구두 약속' 아닌 기록화해야 증빙 가능"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지속되는 건설 경기 침체로 건설사들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해당 건설사들과 하도급 계약을 맺은 영세 건설사들에 대한 대금 지급이 지연될 경우 재하청 등 관련 업체들의 연쇄 부도도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건설업계는 잇따른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으로 여전히 공사비 등 비용 절감에 분주하다. 건설 공사는 발주처로부터 공사를 도급받은 종합 건설사(원청사)를 중심으로, 이 공사를 다시 구역별로 나누는 하도급계약이 체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원청사가 가장 일반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최저가 공사비를 제시하는 하도급사에 일을 맡기는 것이다. 또 하도급사에 절대 공기를 정해줘 공사기간을 단축하고 현장 유지관리비를 줄이는 방식 등을 사용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비용 절감에도 실제 현장에선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하도급사들의 호소가 나날이 늘고 있어서다. 최근 종합 건설사들의 유동성 문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건설 경기가 악화하며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10곳의 종합 건설사와 16곳의 전문건설사가 부도 처리 됐다. 이는 5년 만에 최대치다. 아울러 종합 건설사 폐업 건수도 39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8%나 증가했다. 원청사인만큼, 한 종합 건설사의 부도는 최소 수십 곳의 하도급사에 피해를 줄 정도로 여파가 크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로 최근 자금난을 겪던 한 종합 건설사가 법정 관리에 들어가면서 이 회사가 시공한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선 하도급사 약 17개 업체가 1년째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연일 시위에 나서고 있다. 이들 하도급사가 떼일 위기에 놓인 공사대금은 약 3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시공사가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짓고, 아파트 분양대금으로 이를 갚을 예정이었는데 미분양이 나며 자금회수가 어려워진 탓이었다.
대금 미지급 사태는 중소 규모 건설사에 국한되지 않았다. 최근 대형 건설사 H사 등도 충남 당진에 진행 중인 LG화학 공장 공사에서 하도급사와 협력사에 대한 공사대금 미지급 논란이 된 바 있다. 하도급사들은 시공 계약서도 없이 공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 H사 측이 자금난 이유를 들며 8월 기성금 약 11억원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9월 또는 10월 초까지 대금 지급을 약속했으나 이후 회사 측이 다시 대금을 깎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H사 관계자는 "정산 문제로 대금 지급이 늦어졌지만 어제까지 지급을 완료했다"라며 "대금을 받은 하도급사가 다시 도급을 준 업체들에게는 12월 중 지급할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대형 종합건설사들의 하도급금 지급 일정은 지난해 대비 늦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공정거래위원회 공시를 보면 올해 상반기 10대 건설사 중 '하도급 대금 법정 지급기한'(60일)을 초과해 지급한 건설사는 10곳 중 6곳(60%)으로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SK에코플랜트 등이다. 도급순위 30위로 넓혀보면 법정 지급기일을 초과한 건설사는 총 13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0위권 내 법정 지급기일을 초과한 건설사는 딱 1곳뿐이었다. 법정 지급기일을 초과하면 별도의 지연이자와 함께 지급해야 한다.
금액이 수억원대에서 수십억원대로 크진 않아 대형 건설사 입장에선 재무에 심각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그만큼 빠듯해진 건설업계의 자금 사정이 드러난 대목이라는 분석이다.
원청과 하청사 간 분쟁도 지속 늘어나는 추세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공정거래조정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10대 건설사의 하도급 관련 분쟁 조정 신청 접수는 △2021년 31건 △2022년 33건 △2023년 53건 △올해 8월까지 44건으로 지속 늘고 있다. 반면 합의 성립률은 △2021년 58% △2022년 39% △2023년 49% △올해 27%으로 낮아지는 모습이다.
특히 하도급사는 원청사에 추가 공사대금을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의 특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빌미로 원청사가 공사 대금을 주지 않는 사례도 잦다는 평가다. 그러나 하도급사의 대금 조정 신청 권리를 제한하는 약정 자체가 하도급법이 금지하는 부당 특약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 최근 대법원의 판례에서 등장하고 있다.
공사대금 지연 피해는 고스란히 업계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건설업종 임금 체불 규모는 1년 전보다 26% 늘었다. 전체 업종별 체불액 중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2020년 17.6%에서 올해 상반기 23.7%로 증가했다.
익명을 요청한 하도급 분쟁 관련 전문 변호사는 "건설 현장은 설계 변경이 잦고, 자재 등의 가격 상승, 또 하자여부 등에 따른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어 원청사·하도급사 간 분쟁이 많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문한 사례들을 보면 하도급사는 원청사의 '구두 약속'을 믿고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공사 계약 시부터 원청사와의 모든 이슈들을 공식 문서, 메일 또는 문자 등 문서적 근거, 녹취 등 기록화해놓아야 향후 증빙자료로 사용할 수 있다"며 "특히 미세한 설계변경 요청이 오면 꼭 원청사로부터 15일 내 변경 내역을 기재한 서면을 받아 공사비 증가분에 대한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