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탓이오'가 아쉬운 우리은행
'내탓이오'가 아쉬운 우리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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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공인호 기자] 우리은행의 대규모 투자손실과 관련된 책임 논란이 뜨겁다. 우리은행은 지난 수년간 투자했던 15억8000만달러의 미국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디폴트스왑(CDS)으로 1조6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투자손실은 고스란히 대규모 적자로 이어졌으며, 이 때문에 지난해 시장 일각에서는 우리은행에 대해 '회생불가능'이라는 극단적인 진단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올 들어 글로벌 금융시장이 안정세를 되찾는 한편, 금융당국과 은행들의 적극적인 공조로 최악의 고비는 넘겼다. 하지만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은행으로서 대규모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 규명'은 풀어야할 숙제로 안게 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논란이 전현직 CEO간 대립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금융지주의 전직 CEO로는 황영기 현 KB금융지주 회장과 박병원 전 청와대 수석, 박해춘 현 국민연금 이사장이다.

특히 황영기 회장은 지난 2004년부터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을 겸임하며 은행권의 자산경쟁을 주도했으며, 파생상품 투자도 황 회장의 임기 중에 대부분이 이뤄졌다. 우리금융 3기를 이끈 박병원-박해춘 경영라인은 황 회장의 '공격경영'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1년여만에 동반 퇴진했다. 이후 이팔성-이종휘 체제는 이제 갓 돌을 넘긴 상태다.

우리금융을 이끌었던 기간만 따지면 회장과 은행장까지 겸임했던 황 회장의 과오가 크다. CDS CDO가 집중적으로 투자된 것도 황 회장의 임기 중이었다. 이와 관련 황 회장은 CDO, CDS 투자 결정은 2004년 3월 취임 이전에 결정된 것이며, 2007년 퇴임 이전까지 정상적인 수익을 내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생상품 손실 논란이 윤병철 회장, 이덕훈 행장의 우리금융 1기 경영라인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인다.

당시 자산확대 경쟁을 주도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은행간 경쟁이 치열했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문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파생상품 손실의 책임은 우리금융의 적자경영이 시작된 지난해 9월 이후의 경영진에게 있으며 '내 탓이 아니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관련 이팔성-이종휘 현 경영진도 맞수로 대응하고 있다. 최근 이팔성 회장이 당국을 상대로 파생상품 손실의 책임이 황 회장에게 있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황영기 회장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후문이다. 이팔성 회장은 지난해 취임 직후 전현직 CEO들을 한자리에 모아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일단 이 회장으로서는 취임 직후 3개월여만에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맞았다는 점에서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그러나 이 회장 역시 취임 일성으로 '자산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만큼 위기관리에 소홀했다는 비판에서 비켜가기는 어렵다. 황 회장도 현직 CEO들이 파생상품 손실이 커지기 전에 미리 처분하지 못했다는 점을 과오로 지적하고 있다.

올 초 이 회장은 우리금융의 경영악화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며 유감을 표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내 탓이오'와는 거리가 있다. 결국 우리금융 전현직 CEO 모두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책임을 지겠다는 리더는 단 한사람도 없는 셈이다.

물론 '내 탓이오'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논란에 휩싸인 CEO들은 모두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내로라 하는 거물급 인사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투자손실을 두고 전현직 경영진들이 벌이고 있는 신경전은 누가봐도 볼썽사나운 일이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머리 숙일 줄 아는 책임 있는 금융 리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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