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증권산업, '한국판 골드만삭스' 요원한가?
'거꾸로 가는' 증권산업, '한국판 골드만삭스' 요원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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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뿐인 구조조정 수십년...양적 팽창 '여전' 
"금융당국 주도의 장기·구체적 계획 필요"

[서울파이낸스 박선현 기자] 최근 산업계 및 금융권을 중심으로 구조조정 바람이 일고 있지만, 증권업계만은 반대로 가고 있다. 대형화 차원에서 증권업계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대두된지 오래됐지만, 구조조정은 커녕 되레 양적으로 숫자만 늘어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의 정책방향과 거꾸로 가고 있는 것. 은행산업이 환란이후 일관되게 대형화의 길을 걸어 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푸르덴셜투자증권이 매물로 출회됐을 뿐이다. 왜 그럴까? 증권업만이 지닌 고유의 특성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경쟁을 통한 자율적인 지각변동은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며, 업계와 금융당국 공조를 통한 보다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계획및 추진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금융당국의 적극적이고도 구체적인 개입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 과연,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탄생은 요원한 것인가?

■62개社…금융당국 오판
국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증권사수는 외국계 증권사를 포함해 총 62개사다. 자본시장법 시행 에 대비해 증권업이 이른바 ‘돈이 되는 시장’으로 인식되면서 지난해부터 산업계를 비롯한 은행들이 마구잡이로 진출한 탓이다. 당시 업계에서는 사업의 특성도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발담그기식’ 진출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그들의 행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처럼 증권사들이 '난립' 수준으로까지 변질된 데는 금융당국도 책임도 크다. 지난 2007년 11월, 금융당국은 증권사 간 경쟁 촉진과 대형화를 통해 국내 증권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방편으로 ‘증권업 허가 정책 운용 방향’을 확정하고 신규 증권사 허가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허가정책은 발표 초기부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됐었다. 증권사 몸값을 낮춰 M&A를 활성화 시키겠다는 당초의 계획에 불합하게 대부분 중소형 증권사들은 M&A의 필요성에 대해 안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우려는 적중했다.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증권가 매물로 출회된 곳은 유진투자증권과 푸르덴셜투자증권 단 두 곳에 불과하다. 더욱이 유진투자증권의 경우 증권업 자체에 대한 어려움 보다는 그룹내 유동성 확보를 위한 선택이었다.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2007년 당시 머니무브현상이 더욱 가속화 되고 있어 위탁매매업만으로도 생존이 가능한데 중소형 증권사들이 굳이 몸값까지 낮추면서 M&A를 하지는 않을 것이란 의견이 팽배했다"며 "시장의 우려를 뒤로 하고 증권업 허가 정책을 실시해 이 상황을 초래한 금융당국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신생證 절반이 적자…수익성 악화
이처럼 제한된 파이를 갖고 싸우다 보니 증권사들의 수익은 증시 상황에 일희일비 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올해는 증시 호조로 증권사 실적이 선방했기는 하지만 문제는 내년이다. 증시 침체로 인해 거래대금은 점차 감소하고 있고 펀드환매가 계속되면서 수수료 수익 또한 줄고 있다. 여기에 최근 출구전략 논의가 진행되면서 금리가 상승기조로 진입, 채권 평가손실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증권사들의 제2의 모멘텀으로 기대됐던 CMA의 경우 계좌는 늘고 있지만 잔고는 오히려 줄고 있다.
따라서 내년 증권사들은 실적 개선세는 이어가겠지만 상승폭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신영증권에 따르면 내년도 9개 대형사들의 합산 순이익은 전년대비 9.8% 늘어난 1조9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진출한 신생증권사 8곳중 4곳이 여전히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브로커리지에 국한된 사업구조로 인해 아직까지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말 설립허가를 받은 신설 8개 증권사의 2009회계연도 상반기(4~9월) 당기순이익은 61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IBK투자증권이 78억원의 흑자를 냈고, LIG투자증권(47억원), 토러스투자증권(10억원), 한국SC증권(1억원)은 적자에서 소폭 흑자 전환했다. 반면 KTB투자증권(48억원), 바로투자증권(7억원), 애플투자증권(7억원), ING증권(6억원) 등 4개사는 적자를 이어갔다.

대신증권 강승건 연구원은 "출구전략 시행으로 회전율이 하락하고 경기지표 반등 둔화로 주가지수가 박스권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는 곧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익감소로 이어질 것이다"고전했다.

이어 "자본시장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자본력과 글로벌 네트웍크로 인해 IB와 PI에서의 의미있는 수익구조 다변화는 나타나지 않을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경영실태평가 '마지막 카드'(?)
물론, 그동안 금융당국은 금융투자회사 자본금 5000억원 상향조정, CMA 및 펀드 과당경쟁 제제 등을 실시하며 간접적으로 증권사 빅딜을 유발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의도와는 달리 업계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는 상황. 

관계자들은 경영실태평가가 증권사 숫자 조절을 위한 금융당국의 '마지막 카드'라고 말한다.  금융당국은 지난 4월 급변하는 글로벌 금융환경에 적절히 대응하고 자본시장법 제정취지에 부합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며 평가내용을 개정했다. 금융위기 발생 시 회사 재무상태가 가장 빠르게 악화되는데도 대응이 늦어지는 문제가 있다며 평가주기를 분기별 원칙에서 월별로 바꾼 것이다. 평가결과 후 등급도 1등급(우수), 2등급(양호), 3등급(보통), 4등급(취약), 5등급(위험)의 5단계로 구분하기로 했다.

아직까지 금융기관에 대한 평가 결과 열람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지만 좀 더 효율적인 검사를 위해 검사 주기 단축 및 검사역의 전문성 제고 등 보완의 노력을 보이고 있다.
실제 내년 3월부터는 증권사들의 리스크 모니터링을 위한 위험평가시스템(RAMX)이 실시된다. 경영실태평가의 보완된 시스템인 셈이다.

금융투자업 가운데 투자매매업의 상대적인 고위험성을 감안해 현행법상 의무평가대상(45개 증권사)인 투자매매업자 외에 장내파생 투자매매업자도 평가대상에 포함된다. 현재까지는 장내파생 투자매매업자 가운데 자산 1000억원 이상인 회사가 없지만 곧 선물회사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의무평가대상 회사는 월별로 위험평가가 실시되고 추가로 평가대상이 되는 회사는 분기별로 금융당국의 위험평가를 받는다.

또한 비계량평가항목인 이해상충방지체계 평가를 신설하고 지급결제 서비스 관련 평가도 강화할 방침이다. 아울러 파생상품거래 위험관리와 위기상황분석 결과가 적절하게 활용되는 지 여부를 평가키로 했다.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경영실태평가의 실질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 전염을 우려한 금융당국의 신중한 태도 때문에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며 "그러나 아직까지 시행 기간이 짧고 위험평가시스템 등 꾸준히 제도 보완의 노력을 하고 있어 머지않아 가시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형화 시간 걸릴 듯"
그러나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메가증권사' 탄생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대투증권 한정태 연구원은 "국내 증권사의 대형화 유도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며 "증권사들이 대형화에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이고 정부도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없으며, 환경 자체도 아직은 대형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년 우리금융 민영화 과정에서 우리투자증권 매각이나 대우증권 매각 등으로 정부가 나서서대형화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을 사용한다면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좀 더 때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M&A를 위한 내부적 압력이 커질 수있고 수요를 자극할 수 있는 주변 여건도 비교적 우호적임을 감안하면 판도변화에 대한 기대감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법시행과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안의 영향으로 자본의 대형화와 집중화가 강조돼고 있고 저금리로 인해 유리해진 조달 비용과 낮아진 가격부담도 M&A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다.

신영증권 박은준 연구원은 "자발적인 인수합병 시도에 우호적인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며 "빠른 성장을 통해 업계 상위권 진입을 노리는 은행계열과 대기업계열 증권사들이 매수주체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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