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칼럼] 선거철 되새기는 사료 속 정치史
[홍승희칼럼] 선거철 되새기는 사료 속 정치史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이제 본격적인 2016년 총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그 시작까지 가는 과정에서 여야 가릴 것 없이 색다른 공천 경쟁으로 일단 세인의 관심을 끌기는 했으나 그것이 과연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을 깨운 것인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방관자를 더 늘리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여당은 정치인들의 정당활동이라기보다 수렴청정에 의해 이끌려가는 모양새를 드러냈다. 누구나 예상하지만 그 실체가 결코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수렴청정의 주인공은 원래 임금의 종자가 따로 있어서 나이 어린 후계자라도 왕으로 세워놓고 살아있는 부모 한쪽이 실질적인 정치를 펼치는 왕조시대의 유산인데.

그런가하면 한쪽 팔이 찢겨 나간 제1야당은 어찌 보면 이솝우화의 개구리나라 임금님 찾기 같은 그림을 보여줬다. 우리에게도 임금님이 필요하다며 여기저기서 인물을 구해다 앉히니 오히려 개구리들을 차례로 잡아먹어버리는 사태를 겪고 있는 꼴 아닌가.

게다가 ‘새로운 정치’를 외치며 분가해나간 신당은 자릿수 채우기에 급급해 전혀 새롭지 못한 인물들의 집합소처럼 변해버렸고 그나마 당의 진로와 목표가 저마다 각기 다른 이들이 모이다보니 시작하자마자 갈등이 소용돌이를 친다.

어떻든 그런저런 과정을 겪으며 총선레이스의 출발점에서 달려나간 출마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본시 옛 시조 한 자락처럼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끝내 선거의 결과라는 하나의 답은 나오게 돼 있으니 필자와 같은 장삼이사가 더 이상 왈가왈부할 뜻은 없다.

그보다는 멀쩡하던 사람들이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일단 초죽음이 될 때까지 일단 두들겨 맞고 다행히 살아남으면 자신을 두들겨 팬 이들과 똑같은 길을 걷게 되는 그 신기한 광경에 더 관심이 쏠려 역사 사료들을 뒤적여봤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은일(隱逸)이라는 인재 발탁 제도와 그렇게 발탁된 이들의 이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은일이란 사전적으로 보면 세속을 떠나 숨어 지내다, 혹은 그렇게 숨어 지내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조선시대의 은일이란 세속에서 떨어져 숨어 지내며 오로지 학문의 길에만 정진하는 사림파들을 조정에서 끌어내 쓰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과거도 보지 않는 그들을 끌어내 쓰려면 별도의 채용과정이 필요하고 그래서 숨은 학자를 발굴해낸다는 의미로 은일이라 부르는 벼슬길로 나갈 통로를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출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하던 학자들이 현실정치에 발은 딛게 되면 어느새 혼탁한 현실정치세계에 휩쓸리며 만신창이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귀양도 가고 사약도 받고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경험도 하게 된다.

물론 여느 사대부들과는 다소 다른 행보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떻든 물러날 때를 놓치고 현실정치의 치고받는 막장 싸움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들 뒤로 줄을 선 후학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쉽사리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본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파당의 우두머리가 되어 세속이 홍진에 흠뻑 젖게 되는 것이다. 은일은 단지 출사의 방식에서만 차이를 드러낼 뿐 실제 정치적 행보에서 특별한 차별 점을 보이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요즘은 누구나 스스로 출사표를 던지며 정치판에 등장하고 있으니 그런 재야발탁 케이스가 흔치도 않지만 있다 해도 조선시대와 상황이 크게 다를 바는 없어 보인다. 제1 야당에서 이번에 솎아내기를 당한 인물들 중에는 실상 그런 재야발탁 케이스로 국회에 입성했던 이들이 여럿 있었으나 이제 그들의 신선도가 떨어졌다고 폐기처분 당한 셈이긴 하다.

정치판이란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라는 떡을 두고 선점하기 위해 다투는 무대이니 애당초 점잖은 경쟁이 불가능한 속성을 지녔다. 그러니 처음 정치판에 발을 디딜 때 제아무리 고결한 이상을 갖고 나섰다 해도 어차피 그런 진흙탕 속 싸움을 이겨내고 무사히 살아남은 이들만이 최종 승리의 깃발을 붙들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정치판에서도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겠다고 저마다 목청을 돋우며 한 표를 호소하고 있지만 결국 그 바닥에서 최종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진흙 범벅이 되지 않으면 안 되리라. 결국 우리 유권자들도 깨끗한 정치인 찾기는 미리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정치 얘기는 하고나면 늘 뒷맛이 씁쓸한가보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