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정치인들의 가장 큰 무기는 ‘말’이다. 국민의 지지,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자리보전이 되지만 바로 그 지지를 얻어내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게 ‘말’이다. 말솜씨라고 할 수도 있고 설득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이 꼭 논리적으로 딱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보장도 없다는 데 또 정치인들의 ‘말’이 갖는 복잡 미묘함이 숨어있다.

처칠이 그랬다던가? 유능한 정치인이란 10년 앞을 내다볼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예측이 틀렸을 때 대중들을 잘 설득할 언변이 있어야 한다고. 이 말도 결국 대중을 설득하는 ‘말’의 힘을 달리 표현한 것이나 다름없다.

요즘 정치인들의 주거니 받거니 하던 말들을 두고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양새다. 편법도 부끄러움 없이 구사해가며 숫자 늘리기에 열중한 결과 지난 선거에서 잠시 보였던 여소야대 구도는 이미 깨졌나 싶지만 그래도 어쨌든 대중들로서는 힘이 비등비등해졌으니 이제 서로 협의해가며 상대 요구도 들어줘가며 오순도순 정치해 나가려나 싶은 순진한 기대도 할 법했다.

그런데 결과는 기세 싸움에서 밀리면 다음 선거 끝장난다는 절박함을 보이는 정부`여당이 야당 반대로 추경예산안을 제때 통과하지 못하겠다고 압박하던 게 언제냐 싶게 예산안 본회의 통과가 예상됐던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를 문제 삼아 몽땅 자리를 박차고 나갔단다. 이거 원래 힘없고 숫적으로 밀리는 야당이 전매특허처럼 사용하던 행태였던 것 같은 데 어느 결에 여당 의원들이 똑 같은 행동패턴을 보이니 꽤 흥미롭다.

게다가 여당이 그러자 오히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원내대표는 시한내에 돌아오면 예산안 처리가 가능하다고 자리 박차고 나간 여당, 새누리당을 설득하는 재밌는 그림이 나타난다.

실상 추가경정예산안은 야 3당이 주장해온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놓고 전날 늦게까지 막판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정부`여당이 주문한 교육시설 예산 2천억원과 복지예산 1천3백82억원 증액안을 수용함으로써 어렵사리 타결을 봤었다. 모처럼 ‘협치’의 미를 보였나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간신히 타결된 추경예산안을 내팽개쳐 버린 여당 의원들에 대해 그동안 추경예산 통과가 늦어 경제회생의 기회를 잃겠다며 속타는 듯 서둘러 통과시켜달라고 읍소하던 정부도, 청와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뜻밖의 반응에 순진한 대중은 오히려 당혹스럽다.

아무래도 청와대에서 보기에 새누리당이 거둔 협상 성과가 성에 차지 않았던가 보다. 청와대의 반응이 시원찮으니 새누리당으로서는 무슨 핑계를 대던 추경 통과를 뒤로 미루고 재협상을 해야 할 처지가 된 것 같고 울고 싶은 새누리당에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는 뺨을 때려준 셈이 됐다고 봐야 할 모양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가 정확히 어떠해야 옳은 그림인지에 정답은 없겠지만 우리는 이제까지 역대 정부와 여당들이 보여 온 어떤 그림에도 그다지 만족하지 못해왔다. 여당이 대통령을 흔들고 나서는 꼴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지만 대통령의 손짓, 눈짓이 없으면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하고 끌고 가지 못하는 여당도 보기 민망하다.

그런데 요즘 대한민국은 대통령과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참모진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방향을 결정해줄 때까지 여당은 물론 정부 부처들도 아무 일도 안하려고 든다. 여당 내에서는 오히려 찻잔 속의 폭풍일망정 비주류들이라도 잠시잠깐 들썩여 보지만 정부 관리들은 그저 세월만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요즘 북한 정권의 잇단 숙청 소식 전하기에 열 올리는 종편 방송들을 본의 아니게 매일 듣고 살아야 하는 게 필자의 처지다. 그런데 방송을 듣다보면 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째 남이나 북이나 똑같이 온 사회가 한 사람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게 아닌가 싶어서 참으로 입맛이 씁쓸해진다.

물론 정적을 공개처형해버리는 북한 정권과 단순 비교될 사안은 아니지만 온 사회가 한 곳만을 바라보고 국가 권력은 그 한 사람에게만 나오는 것만 같은 현상, 그렇게 어딘가 서로 닮은 부분을 보며 설마 이게 우리 민족의 한계인가 싶은 안타까움을 지우기 어려운 것이다. 다시 이런 네거티브 정서가 우리의 민족성이라고 자기비하할 일만은 없길 진정으로 바란다.